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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12호

유재력 사진작가의 사진
찰칵! 포착의 순간,
역사가 기록된다
사진작가 유재력
CU가 만난 사람
글.양지예 사진.고석운
찰칵!

포착의 순간,

역사가
기록된다

기록의 예술이라 한다면 단연 사진이 아닐까. 보도사진으로 시작하여 상업사진까지 시대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유재력 사진작가. 여든 살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다. 사진과 유재력.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걸어오며 서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유재력 사진작가
오래된 신문에 소개된 유재력 사진작가
 
당신이 역사다

유재력 작가가 터를 잡은 서울 용문동 인근의 사진관에 찾아갔다. 입구에는 레트로 감각이 진하게 느껴지는 흑백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에 안타까운 이별을 고하고 떠난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의 사진도 눈에 띄었다. 그와의 만남이 더욱 설렐 수밖에. 예술의 향기가 흠씬 풍기는 사진들을 따 라 2층으로 올라가니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 헌팅캡을 멋스럽게 코디한 80대 노신사, 유재력 작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대한민국 사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유재력 작가는 이름 석 자만으로도 존재감을 증명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80대에 접어들었지만 차림새나 사진관 내부의 인테리어에서 예술가의 감각이 묻어났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대형 카메라와 피사체의 개성이 느껴지는 흑백사진이 특히 눈에 띄었다.

“19세기식 대형 카메라로 300인의 인물 사진을 찍고 사진집을 출판하는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입니다. 사진의 고전인 19세기식 흑백 촬영을 하고 암실 인화 체험도 할 수 있어요.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 세대와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 세대, 은퇴한 중년들, 다양한 세대를 고전적인 방식으로 찍어 영구적인 기록으로 만들고 있어요. 우리 모두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유기체임을 상기시키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시대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프로젝트입니다.”

최근 유재력 작가는 텀블벅 프로젝트에 흠뻑 빠져있다. 휴대폰 사진의 보급으로 일회성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에 고전적인 방식으로 돌아가 사람과 역사를 기록한다. 300인 중에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기록함으로써 오늘을 기록하는 것이다. ‘당신이 역사’라는 유재력 작가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프로젝트다.

“인간을 찍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어요. 한 인간의 삶을 보면 역사를 볼 수 있어요. 60여 년의 세월 동안 다양한 용도의 사진을 찍어왔지만 어떤 사진을 찍던 결국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을 통해 역사를 기록해온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일종의 의무처럼 그 임무를 이어가고 있는 거죠.”

대한민국 역사의 순간을 기록하다

유재력 작가에게 사진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렌즈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원리를 배우면서 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6.25직후였던 당시 흔히 볼 수 없던 사진기를 레이션 박스를 이용해 직접 만들만큼 카메라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훗날 대학 학보사의 사진기자를 거쳐 신문사 사진기자로 취직하게 된다. 민주화운동과 경제발전으로 격동의 시기를 지나던 당시 신문사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 혁명재판 등 역사의 현장을 누비며 셔터를 눌렀다.

60년 대 중반, 본격적으로 칼라 사진의 시대가 열리고 ‘주부생활’, ‘여성동아’ 등 다양한 여성 잡지가 창간되면서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잡지사에 스카우트된 그는 패션·광고 사진을 찍게 되었다. 여성잡지 창간이 처음이라 그의 행보는 모두 최초의 이력이 되었다. 당시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막 데뷔를 하였고, 전문 모델조차 없던 당시 그가 직접 발탁한 모델 조혜란이 무대에 서며 한국 모델의 효시가 되었다.

“당대 유명 배우, 모델들과 모두 작업을 했어요. 한 번은 부산에 갔다 오는데 안성쯤 와서 타이어가 펑크 나면서 사고가 크게 났어요. 서울에서 정소녀와 유지인 같은 유명 배우들이 저만 기다리고 있는데 사고가 난 거예요.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이라 다친 몸을 이끌고 주변 동네 이장 집에 가서 스튜디오에 전화를 걸었죠. 밤새 치료하고 다음날 다시 촬영을 하러 갔어요. 다행히 오른손 검지는 안 다쳐서 셔터를 누를 수 있었거든요. 손가락 안 다친 것에 안도하는 걸 보면 이 일이 저에겐 천직인가봅니다.”

이처럼 유재력 작가는 보도사진과 패션사진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최초의 기록을 써내려가며 최고의 사진작가로 우뚝 섰다.

“보도사진이나 패션사진이나 결국은 같아요. 사건을 기록하는 것도 인물을 찍는 것도, 패션사진도 결국 사진작가가 어떤 순간을 선택해 찍어서 관객들에게 스토리와 감정을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진에는 사진작가의 선택이 있고 그 선택을 위해서는 크리에이티브가 발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진이 예술인 거죠.”

인터뷰 중인 유재력 사진작가

“한 인간의 삶을 보면 역사를 볼 수 있어요. 어떤 사진을 찍던
결국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을 통해 역사를 기록해온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을 넘어 세계로, K-사진의 효시가 되다

유재력 작가의 이력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말레이시아 왕실 공식 작가’라는 이력이다. 한국에서 이름을 알린 유재력 작가는 한 신문사 매니저의 초청을 통해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왕실 공식 작가라는 직함까지 얻게 되었다.

“보통 식당이나 사무실 같은 공공장소에는 모두 왕 부부의 사진을 걸어놓게 되어 있는데, 제가 찍은 사진이 공식적인 초상화가 되는 거죠. 이처럼 왕가의 공식 초상화나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을 왕실 공식 작가라고 합니다.”

유재력 작가는 말레이시아에서도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작년에 그는 국제적인 사진작가로 활동한 경력을 인정받아 2022년 광고 산업 발전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카메라를 처음 잡았을 때부터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지독한 에고이스트에요. 평생 사진으로 나를 표현해왔다고 생각해요. 사진은 사실 그대로의 순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포착하는 거예요. 그 한 순간은 나의 선택이니까 결국 나는 평생 나를 기록해 온 거죠.”

유재력 작가는 지금도 매일매일 용문동을 기록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 현시대를 살고 있는 나를 기록하는 것이다.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 60여 년의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기록은 유재력 작가의 삶이다. 카메라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삶을 기록하는 노(老)작가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재력 사진작가의 카메라
유재력 사진작가의 사진
유재력 사진작가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