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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12호

새벽 하늘
엄마의 새벽
밸런스 에세이
글. 이수현(소설가, 도서 ≪기록하는 태도≫, ≪유리 젠가≫ 저자)

엄마의 밤이 길어진 때는 언제부터였을까. 한 번 잠이 들면 깊게 자는 나였기에, 그녀의 변화를 직접 알아챈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느 새벽, 전날 짜게 먹은 음식 때문인지 밀려오는 요의를 참을 수가 없었다. 단잠과 화장실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후다닥 일어나 거실로 나간 시점이었다. 모두가 베개에 머리를 대고 단잠에 빠져들 시각, 엄마는 푸른 빛의 텔레비전 앞, 건전지가 나간 인형처럼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물을 마시려다 공허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시계를 바라보니 이미 새벽 세 시가 훌쩍 넘어간 시간이었다.

“엄마. 아직 안 잤어?”

“어? 그냥. 잠이 잘 안 오네.
소리 때문에 깼니? 좀 줄일까?”

엄마는 불안한 새벽을 들킨 게 민망했는지 재빨리 리모컨을 들어 볼륨을 줄였다. 어쩌면 나는 엄마의 뒤척임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중년에 가까워진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갱년기 때문인지 자꾸 얼굴에 홧홧한 열이 오른다고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 변화와 함께 인생이 덧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도 말했다. 엄마가 가끔 늘어놓던 푸념을 바쁜 일상을 핑계로 뒷전에 미뤄두고 있었다. 엄마의 아픔은 내게 부채감, 혹은 마주하기 귀찮은 일과도 같았으니까.

회사나 대학원에서 돌아온 늦은 밤, 지친 몸을 이끌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엄마와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는 날도 많았다. 내내 홀로 마주했을 엄마의 새벽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 같아 미안했다.

낮이 되어서야 엄마는 미뤄왔던 잠을 마치 숙제처럼 청해 잤다. 찬찬히 들여다보는 그녀의 얼굴 속에, 내가 알던 그녀의 젊음이 사라진 것 같아 애틋하고, 서운했다. 오랜만에 연필을 깎았다. 그리는 일은 내가 학창 시절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갖고 있던 소소한 취미였다. 갑자기 그녀를 그리고 싶었다. 사각거리는 연필로 잠든 그녀의 모습을 아주 오랜만에 화폭에 담았다.

평소 아주 잘 알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엄마의 얼굴이 생소했다. 기록하니 그녀가 건너온 시간과 감정이 눈에 들어왔다. 알알이 아로새겨진 주름과 한층 희끗희끗해진 머리, 에너지가 소진된 사람이 지니는 특유의 공허함 같은 것들이 그녀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엄마의 얼굴을 기록하며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미안함을 느꼈다.

엄마의 나이가 되어 보니 그녀 스스로 아이 둘을 책임져야 했을 현실이 가혹하고, 버거웠으리라 감히 짐작해본다. 젊은 시절 대기업 커리어 우먼으로 이름을 날렸다던 엄마는 나를 가진 뒤, 전업주부의 삶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특유의 재바른 성향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에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셨으니. 성장하는 내내 나는 그녀의 성실하고 부지런한 모습을 보며 자라왔던 것 같다.

오랜만에 장롱에서 육아 일기를 꺼내 보았다. 한창 꼬물거리던 나를 바라보며 써 내려갔을 하루의 기록. 일상부터 먹는 양, 심지어 대변을 보는 양까지 엄마는 참 세세하게도 적어놓았다. 온통 사랑으로 가득 채운 문장 속 나는 젊었던 엄마의 시간을 따라 걸어보았다. 빽빽하게 적힌 몇 권의 육아 일지를 덮고 나니, 마음이 울컥했다.

이젠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주고 싶었다. 뜻하지 않은 그녀의 새벽을 마주한 뒤, 나는 매일 엄마의 마음을 돌보는 편지를 쓴다. 엄마가 집에 있던 낮 동안, 오늘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 옆자리 김 대리가 전해준 재미난 이야기부터 시작해, 감정과 인연, 마음 등을 편지에 모두 담아낸다.

함께 있지 못한 시간 속 기록을 보고 엄마는 때론 깔깔거리며 웃다가, 때론 눈물을 훔친다고 했다. 엄마를 향한 찬란한 모양의 감정을 술술 적으니 나 역시 쌓아왔던 부채감을 조금이나마 풀어낸다.

얼마 전부터 식탁 위에 놓이기 시작한 답장이 참 반갑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 속, 빈 허기와 마음을 채워나간다. 엄마의 새벽이 더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춥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록은 어둡고 컴컴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가,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힘이 되어 준다.
우리는 서로를 살피는 따뜻한 기록의 힘에 기대어, 또 살아나갈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