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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6호

정원 디자이너,
아이디얼 가든 임춘화 대표

CU가 만난 사람
글.한율 사진.고인순

정원,
삶의 공간

자연에 대한 남다른 감성과 감각적인 손길로 고요하고 사랑스러운 정원을 만드는 정원 디자이너, 임춘화 대표. 그의 정원에는 식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담겨 있다. 따스한 아침햇살이 담장 위로 가볍게 내려앉은 시간, 경기도 광주시 회덕동에 자리한 임춘화 대표의 정원을 찾았다.



너와의 운명 같은 만남

수풀 ‘림(林)’, 봄 ‘춘(春)’, 꽃 ‘화(花)’. 어쩌면 그의 이름 석 자는 정원 디자이너의 삶을 살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원을 열렬히 사랑하게 된 것도, 정원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게 된 것도, 정원 속에서 자신이 가장 큰 기쁨을 느끼며 살게 된 것도.
임춘화 대표를 만나기로 한 오전 10시, 그의 집 대문은 이미 환하게 열려 있었다. 정원으로 오르는 계단을 비질하고 있던 그가 취재진을 보자마자 환한 얼굴로 반겼다. 그의 안내에 따라 몇 개의 계단을 오르자 초록빛 정원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임춘화 대표가 오랫동안 가꾸고 공들였을 공간.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감동을 선사할 꽃과 나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을 풍부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정원은 사계절 내내 보고 싶은 아름다운 식물로 가득했다.
‘정원 디자이너’라는 직업조차 생소하던 때 국내 정원 디자이너 1세대로 시작해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임춘화 대표는 법학을 전공하고 로펌에서 근무했던 반전의 이력이 있다. 평생 법조계에서 일할 뻔한 그의 인생을 바꾼 변곡점은 2001년 가족과 떠난 영국에서의 생활이었다.

“한국에서도 작고 오래된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살았어요. ‘작은 공간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사용할까?’는 저의 오랜 고민이었죠. 영국에서 살면서 정원에 대해 더욱 관심이 생겼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춘화 대표는 영국 리즈 메트로폴리탄대(Leeds Metropolitan University)와 영국왕립원예협회(Royal Horticulture Society) 할로 카 가든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가든 디자인 전문가 코스 과정을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도시경관 생태조경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이디얼 가든’ 창업과 ‘가든디자인스쿨’ 교육을 동시에 시작했다. 정원을 갖고 싶고, 꾸미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임춘화 대표는 다수의 정원박람회 조성, 경기도 연천 허브빌리지 총괄 등 한국 정원 디자인 업계에서 빛나는 성과를 낸, 우리나라 정원 디자인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쉬고 싶은 정원이자 내 집 같은 정원

정원 디자이너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한다. 조경가가 건축가에 가깝다면 정원 디자이너는 조경가보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직업이다. 그가 존경하는 정원 디자이너 피에트 우돌프의 말처럼, 임춘화 대표는 ‘식물이 주인이 되는 공간’을 만드는 게 정원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공간이어야만 사람의 감성을 건드려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된다.
“정원의 디자인 중심은 식물이에요. 시설물이나 조형물에 힘이 들어가면 식물이 주인공이 되지 못해요. 정원이 생명력을 잃게 돼요. 정원 디자이너로서 저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식재 디자인, 즉 식물의 배치에 관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지식은 공부하고 일하면서 충분히 쌓을 수 있지만 식재 분야는 배우기도 어렵고 가르쳐주는 곳도 적어요. 단기간에 배우기는 더더욱 힘들고요.”

식물이 조화롭게 식재된 정원은 정원을 감상하는 이가 주인이 돼야 한다. 그래서 임춘화 대표는 철저히 정원을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정원을 만든다.

“영국에서 정원 디자인을 배울 때 정원을 참 많이 보러 다녔어요. 길, 마당, 베란다 등 싱그러운 꽃과 수풀로 채워진 영국의 정원 문화는 깊은 감동을 주었어요. 그런데 그 정원들이 마치 우리 집 마당 같더군요. 벤치에 앉는 순간 정말 내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어요. 그 후로 ‘쉬고 싶은 정원’, ‘내 집 같은 정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원 디자이너의 역할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먼저 의뢰인의 요구를 파악해 부지의 규모와 토양 등의 환경을 분석하고 정원의 스타일을 정한다. 연못을 놓을지, 화단을 만들지, 쉼터를 조성할지 등 공간을 디자인하고 난 후에는 그에 따른 시설물을 디자인한다. 식물로 연출하는 단계인 식재 디자인은 마지막 단계다. 나무를 심을지 꽃을 심을지 결정해야 하고 꽃을 심는다면 어떤 종자를 택할지 고른 후 크기, 형태, 색깔, 질감 등을 감안해서 식물을 배치한다. 그래서 정원 디자이너는 예술적 감각, 공학적 지식, 인문학적 지혜가 필요한, 그야말로 융합적인 직업이다.



많은 이들과 나눌수록 행복해지는 공간으로

도시의 삶에 지친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연을 꿈꾼다. 그래서 정원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갖고 싶은 로망과도 같다. 하지만 임춘화 대표는 꼭 넓은 마당이 있어야 정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베란다, 옥상, 현관 입구 등 우리 생활 곳곳에 싱그러운 자연을 들이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심신이 편안해진다면 그것이 바로 정원인 셈이다. 단, 식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쏟는 마음만큼은 꼭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임춘화 대표는 지금까지 많은 정원을 만들어오며 매 순간 보람을 느꼈다. 그가 꾸민 정원에서 행복해하는 사람을 볼 때면, 지상에 낙원을 선물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설계하고 디자인했던 모든 정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특히 강화도의 ‘해오름힐링센터’가 요즘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곳에 갈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곳의 정원에서 행복을 얻고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해오름힐링센터’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정원을 만들겠다는 의뢰인의 뜻에 공감해 임춘화 대표가 재능기부로 참여하겠다고 나섰던 곳이다. 임 대표는 무료로 정원 설계를 맡았다. 그리고 2016년 5월 25일 해오름을 위한 공사가 시작됐다. 그는 설계에 따라 나무와 화초를 조달해 심었다. 정원이 모습을 갖추어감에 따라 화초와 나무를 기증하며 정원 조성에 참여하고 싶다는 이들이 나타나기도 했고, 지금의 해오름힐링센터 정원이 만들어졌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정원이라면 좋겠어요. 제가 정원에서 다양한 행복을 느끼듯이 많은 이들이 정원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누고,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웠으면 하는 거죠.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는 가만히 앉아서 쉴 수 있는 휴식과 위안의 공간, 주변의 꽃과 나무가 위로를 건네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정원이 우리의 삶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정원은 오감의 공간이자 희로애락이 넘나드는 공간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식물이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춘화 대표가 생각하는 정원은 어쩌면 ‘삶의 공간’의 또 다른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나 그곳에서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는. 누구나 그곳에서 위로받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정원말이다.

“주변의 꽃과 나무가 위로를 건네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정원이 우리의 삶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