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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8호

화담숲은 언제든 쉬었다 가라 말한다
여기에 언제나 내가 있으니

CU 핫플레이스
글.김지은 사진.유승현

늘 꽉 막힌 공간에서 눈은 늘 컴퓨터 모니터를 향하고, 바쁜 일정에 발걸음은 늘 빠르다. ‘오늘 혹시 하늘 봤니? 구름이 정말 예쁘다.’ 친구의 카톡에 컴퓨터 밖으로 잠시 마음을 꺼낸다. 이 생활이 당연하다는 듯 살지만 어느 순간 숨이 탁 막힐 때, 자연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보여주며 언제든 쉬었다 가라 말하는 숲. 잠시 숨 고르기 하러 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가 본다. 생태수목원 화담숲에서는 어떤 쉼을 만날 수 있을까?

수천의 초록, 여름의 산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화담숲. 매표소를 지나 관람로에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도시에서 가까운 곳에 이렇게나 산책하기 좋은 근사한 숲이 있음에 감탄한다. 입구의 정면에서 맞아주는 곧게 뻗은 웅장한 소나무를 기점으로 산책이 시작된다.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의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룰 때만이 참 생명이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조성되어 자연의 지형과 식생을 보존하고 있어 진정한 숲 체험이 가능하다. 계곡과 산기슭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초여름의 신록이 수천의 초록빛으로 눈을 쉬게 한다. 단 한 장의 이파리도 같지 않다. 내가 알던 초록이 무한히 늘어난다. 자연의 팔레트는 인간의 색을 경이롭게 넘어선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의 소리, 계곡으로부터 흘러내려 오는 힘찬 물소리, 얼굴을 숨긴 채 아름다운 지저귐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새의 소리가 오감을 깨운다. 고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숲을 들이마시며 걸음 걸음 옮길 때마다 기운이 솟는다. 그야말로 쉼을 위한 산책로다. 화담숲은 자연의 지형과 식생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유모차와 휠체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누구든 숲이 주는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낭만과 사랑의 자작나무숲

탐매원과 자작나무숲으로 향하다 보면 발을 담글 수 있는 곳이 있다. 계곡으로부터 내려온 맑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가본다. 서두를 필요 있는가. 내가 잠시 이곳에 머무른다 하여도 숲은 기다려 줄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숲을 듣는다. 바람, 새, 조곤조곤 들려오는 작은 말소리. 평소라면 듣지 못했을 것들이 들려온다. 이 또한 숲이 주는 치유의 하나일까. 발장구를 치며 잠시 유년으로 돌아가 보고 새의 노래를 들으며 새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이번 산행 동안 한 번은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으며 다음 숲으로 이동한다. 계곡에서 나와 향한 곳은 자작나무숲이다. 2,000그루 이상의 자작나무가 빽빽하게 군락을 이뤄 여태까지 봤던 숲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정경을 만들어낸다. 자작나무 특유의 흰 줄기에 햇빛이 반사되어 숲이 환하게 떠오르고, 작고 여린 자작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종소리를 낸다. 자작나무 줄기의 껍질은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지고 얇아 과거에는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사랑의 글귀를 썼었다고 한다. 자작나무 꽃의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하니 낭만 그 자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뱉고 들이쉬는 숨을 느끼며 천천히 자작나무숲을 걷는다.

자연의 팔레트는 인간의 색을 경이롭게 넘어선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의 소리, 계곡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힘찬 물소리, 얼굴을 숨긴 채 아름다운 지저귐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새의 소리가 오감을 깨운다. 고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숲을 들이 마시며 걸음 걸음 옮길 때마다 기운이 솟는다.

새와 다람쥐와 양의 이빨을 닮은 식물과 함께 한 산책

아름다운 자작나무숲을 지나 다시 관람로를 따라 걷는다. 생수를 한 병 사 목을 축이며 양치식물원에 들어선다. 공기의 밀도가 바뀐 것이 느껴진다. 양치식물원은 습도가 높아 그런지 흙과 풀 냄새가 더욱 생생하게 피부에 와 닿는다. 가장 친숙한 양치식물은 고사리인데 화담숲의 양치식물원에는 청나래고사리, 고비, 참새발고사리 등 30여 종의 양치식물들이 식재되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정원이다. 양치식물이라 부르는 이유가 특히 재미있는데, 잎의 모양이 양 이빨과 비슷해서 양치식물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단다. 양치식물원이 흥미로웠던 또 다른 이유는 화담숲 내에서 새가 가장 많이 출현하는 곳이라 30여 종의 새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새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기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 본다.

새를 보려고 기다리다가 뜻밖의 숲 친구를 만났다! 바로 다람쥐를 만난 것이다! 청설모가 아니라 다람쥐라니!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털이 몽실몽실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바쁘게 오간다. 가까이 다가가니 바위틈으로 재빨리 숨어서 이제 안녕인 걸까 하던 찰나 나무 데크의 구멍으로 퐁 튀어나온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과 앞발의 사랑스러움은 글로 다 옮기지 못할 정도다. 화담숲의 다람쥐가 더욱 사랑스러웠던 것은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찰나였지만 다람쥐의 일생이 짐작되는 순간이었다. 귀여운 다람쥐 친구와 작별 인사를 건넨 뒤 소나무 정원으로 넘어간다.

숲이 가지고 있는 이토록 많은 초록과
풍부한 표정에 기대 숨을 고른다.

소나무의 우아함과 분재의 놀라운 나이!

고양이의 세계에서는 머리가 클수록 잘생긴 고양이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소나무도 그들만의 외모를 평가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나무의 전체적인 모양이 우산처럼 동그랗게 처진 모양이나 삼각형 혹은 자연스럽게 구부러진 모양이 잘생긴 소나무를 나누는 기준이다. 또 휘거나 굽은 줄기를 가진 것이 더욱 멋스러운 소나무이며 나무의 껍질은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갈라진 형태가 선명한 것이 좋다니 잘생긴 소나무를 찾으며 산책하는 것도 하나의 새로운 즐거움이 되겠다. 국내 최대 규모의 소나무 정원으로 1,300그루의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제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는 소나무의 멋스러움에 감탄하며 솔숲의 청명하면서도 향긋한 공기에 몸이 정화됨을 느낀다. 처음 산책을 시작할 때보다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다.

그때 다른 관람객들의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할아버지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소나무 정원 옆으로 조성된 분재원 쪽에 관람객들이 멈춰있다. 예술품을 전시해 둔 듯한 분재원에는 수령이 최소 30년에서 최대 140년까지 되는 나무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다른 관람객이 수령을 알지 못하고 나무에 반말했다가 뒤늦게 나이를 확인하고 사과하는 모습이었다.

“여기는 더 할아버지네!”

화분에 심어진 나무의 섬세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과 그들의 수령에 자연히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숲을 체험하고 여름을 기다린 가장 큰 이유인 수국을 보러 간다. 여름을 물들이는 몽글몽글한 수국은 분홍빛과 파란빛으로 숲의 마지막 여정을 채색한다. ‘수국은 이런 아름다움을 가진 꽃이었지!’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얼마나 잊고 살아왔는지 돌이켜본다. 숲이 가지고 있는 이토록 많은 초록과 풍부한 표정에 기대 숨을 고른다.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숲의 품 안에서 잘 쉬었으니 이만 돌아선다. 한결 맑고 충만해진 영혼으로.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숲의 품 안에서
한결 맑고 충만해진 영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