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2023년 7+8호

자기만의 휴식

밸런스 에세이
글. 우지현(화가, 작가)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개인전 준비에 연재 마감까지 겹쳐 며칠 무리를 했더니 손목과 어깨가 저리고 허리가 뻐근했다. 글감도 떠오르지 않고 그림도 잘 그려지지 않아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나왔는데,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작업실 맞은편의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났다. 꽃들이 아기자기하게 피어있고 푸른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는 공원이었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걷다 보니 잎사귀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고 풀벌레 울음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도 들렸다. 느리게 걷다가 살짝 속도를 올리니 땀이 났다. 흐르는 땀과 함께 쌓인 피로는 물론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온갖 상념과 불안들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다. 평범한 산책이었는데 ‘쉰다’라는 감각, ‘잘 쉬었다’라는 느낌을 받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휴식’의 정의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저 걸었을 뿐인데 많은 것들이 채워졌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좋은 영감을 받았다. 생기와 활력이 생기고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걷는 만큼 채워지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얻었다.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라고 미국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한 바 있듯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나에게는 산책이 잘 맞는 휴식 방법이었던 셈이다.

그 이후로는 휴식이 필요할 때면 걸었다. 일을 하다 막히거나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울 때도 걷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걸었다. 바쁜 일상에 쫓겨 기운을 잃었을 때도 걷고 사는 게 고되거나 힘들 때도 걸었다. 걸으면 언제나 나아졌다. 문제가 완전히 없어지거나 해결되지는 않아도 걷기 전보다 후가 좋아졌다. 산책은 내가 믿고 기대는 나만의 휴식이 되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다. 각자의 환경과 직업, 성격과 성향, 취미 및 애호 등이 다르기에 휴식의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퇴근 후 직장인은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하루의 피로를 씻는 시간이 휴식이고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깐 숨을 돌리는 시간이 휴식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휴식이고 홀로 일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과 친목 활동을 하거나 친교 모임을 갖는 것이 휴식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집에서 여유를 부리는 주말이 휴식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친구들과 캠핑을 가서 놀거나 드라이브하며 바람을 쐬는 주말이 휴식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미술관에서 느긋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이 휴식이고 수영을 좋아하는 사람은 수영장에서 물을 가르며 자유롭게 헤엄치는 시간이 휴식이다. 휴식에는 일률적인 기준이나 정해진 방식이 없다. 나에게 맞는 휴식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때로 휴식마저 최고의 휴식을 꿈꾼다. 그러나 휴식은 자랑도 경쟁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고 세상에 증명할 이유도 없다. 휴식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 최고의 휴식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휴식을 즐겨야 한다. 자기만의 휴식을 즐기는 것이 최고의 휴식이다. 그러니 거창한 휴식을 바라거나 계획하느라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휴식을 미루지 말기를, 타인의 휴식을 부러워하거나 따라 하느라 자신이 만끽할 수 있는 휴식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나의 휴식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듯이 내가 어떻게 하면 쉴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몸소 실천하고 경험하며 나에게 맞는 휴식을 찾아야 한다. 작고 사소한 것들부터 하나씩 시도하며 자기만의 휴식을 찾아야 한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