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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4호

코로나19 이후의
워라밸에는
패라밸이 있다

밸런스 에세이
글.박소현(패션칼럼니스트)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TPO(Time, Place, Occasion)를 바탕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는다 한들, TPO와의 밸런스가 깨지는 순간 패션 테러리스트로 전락한다.
코로나19를 관통해 엔데믹을 준비하는 지금, 이제는 TPO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TPO의 패라밸이다!

코로나19에 잠식됐던 시간 동안 어쩌면 가장 크게 뒤흔들린 건 우리의 몸과 옷차림이 아닐까 싶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강의만 봐도 그렇다. 재택근무나 온라인 강의 때문에 옷을 여러 벌 새로 샀다는 사람은 없어도, 코로나19 때 넷플릭스와 배달 앱으로 찐 살을 못 빼서 예전 옷을 당근마켓에서 처분했다는 사람은 많다. 그랬던 코로나19가 이제 엔데믹(Endemic)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자문자답을 하게 된다.

“전에 입던 옷을 다시 입을 수 있게 살을 뺄까? 말까?”
“새 옷을 살까?”
“요즘 유행은 뭐지?”

이럴 때 워라밸만큼 중요한 TPO의 패라밸이다. TPO의 패라밸은 지향하는 ‘옷차림(Fashion)’과 ‘삶(Life)’을 즐기면서 TPO의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 중 ‘무엇을 중요하게 볼지에 대한 판단(Valuation)’을 뜻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첫째, 시간(Time)에 무게를 두는 것이다.

하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일, 모임, 친목, 자기 계발도 하며 생산적이면서도 성취감을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상의는 전에 입던 것, 하의는 새로 구매하는 것이 좋다. 활동량이 늘어난 만큼 움직일 일이 많은데 이럴 때 불어난 몸을 예전 옷에 욱여넣을 수는 있어도 배와 다리의 불편함은 적응하기 어렵다. 직접 입어보고 편하고 트렌디한 하의를 구매하자. 그리고 액세서리, 안경을 바꾸는 걸 추천한다. 마스크 시절에 마스크 끈에 걸리는 귀걸이와 김이 끼는 안경은 정말 애물단지였다. 하지만 귀걸이를 잘하면 얼굴이 1.5배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안경은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마스크에서 벗어나게 될 날이 머지않았으니 유행하는 아이템으로 하나둘 마련해서 이미지의 ‘갓생(God+生)’도 추구하면 좋겠다.

둘째, 모든 장소(Place)에서 활용 가능한 만능템을 구매하자.

TPO 중에서 장소는 가장 많은 일회성 비용이 드는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결혼식, 졸업식, 생일, 행사 주최, 강연, 조찬 모임, 수주 회의 등 개인적인 장소부터 사회 또는 업무의 연장선상에 이르기까지 장소에 맞는 옷을 갖춘다는 건 옷장이 미어터져도 입을 게 없다는 말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얇아진 지갑 사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이럴 때는 이 모든 장소에 돌려 입을 한 벌 또는 상의 1~2개는 유행에 맞게 사고 나머지는 빌리거나 당근마켓, 번개장터의 새 제품을 활용하면 좋다. 코로나19 이후 다들 한두 사이즈씩 몸이 불어 택도 안 뗀 새 제품을 너나없이 내놓고 있다. 늘 사던 브랜드의 아이템이라면 입어보지 않더라도 실패할 일이 적으니 도전해보면 좋겠다.

셋째, 상황(Occasion)에 변화가 많다면 #OOTD의 역할 콘셉트를 정하자.

MZ세대에게는 TPO보다 오늘 입을 옷을 기록하는 #OOTD(Outfit Of The Day)가 더 익숙한 표현이다. #OOTD처럼 오늘 입을 옷에서 상황에 따른 나의 역할 콘셉트를 집어넣어 코디하자.

가령, 아침에는 리더로서 회의를 이끌지만, 저녁 모임에서는 막내로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하는 경우가 있다. 업무는 보통 앉아 보니 상의는 리더에 맞게 카라 깃에 팍 살아있는 재킷을 입고 저녁에는 막내라서 동동거려야 하니 청바지에 모던한 운동화를 신는 것이다. 혹은 캐주얼한 미팅이지만 알게 모르게 격을 따지는 신경전이 있다면 세미 캐주얼을 입더라도 시계, 헤어스타일, 손톱 정리, 신발에는 힘을 주면 좋다.

선조들이 아이를 서당에 보내 제일 처음 배우게 했던 사자소학에는 ‘용모단정 의관정제(容貌端正 衣冠整齊)’라는 말이 나온다. 얼굴과 자태를 단정히 하고 복장 갖춰 정돈하여 가지런하게 하라는 뜻이다. 어른들 말 틀린 게 없다는 표현이 꼭 맞는 순간이다. 엔데믹이라 하니 코로나19로 뒤흔들린 용모도 의관도 패라밸에 따라 다시 한번 재정비하자. 그리고 그렇게 그리던 과거의 일상을 내일로 기껍게 영위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