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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12호

난중일기
그들의 아주 사적인 일기
기록으로 영원을 얻다
사유의 시간
글. 손은경 참고자료. KBS 〈역사저널 그날〉, 도서 «제시의 일기»
난중일기
사진출처: 문화재청

일기. 사전적 뜻으로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이다.
역사적으로 일기는 후대에 좋은 기록 자료가 되어주고 있지만 일기를 썼던 그 당사자는 이렇게 공개될 줄 알았을까?

난중일기 영웅 이순신, 그도 사람이었다
1594년 8월 30일
원균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니, 천년의 한탄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전장에서 치른 전투, 진중에서 겪은 일과 사람들에 대해 적은 난중일기. 책 표지에 ‘임진일기’, ‘계사일기’ 등 해를 나타내는 간지만 적혀 있는데, 정조 때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난중일기»라 이름을 붙여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입이 무겁고, 약자에 대한 어진 마음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이순신 장군. 하지만 그런 그도 사람이었는지, 난중일기 속에 유독 한 사람에 대한 비난이 자주 등장했다.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의 첫 패배이자,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졸전으로 꼽히는 칠천량 해전의 지휘관이었던 원균이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밀어내고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돌아가는 판세를 읽지 못한 무능함 때문에 전함 수백 척이 수장되고 삼도 수군이 거의 전멸했다. 이로 인해 경상도 해안 일대는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

난중일기
사진출처: 문화재청

난중일기에 원균에 대한 비난이 대략 42회 이상 등장했다고 하는데, 몇 가지를 꼽자면 이렇다.

‘1593년 3월 2일, 원균의 비리를 들으니 더더욱 한탄스러울 뿐이다’, ‘1594년 3월 3일, 원균의 수군들이 우스운 일로 매를 맞았다고 한다’, ‘1594년 8월 30일, 원균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니, 천년의 한탄이다’, ‘1595년 2월 27일, 원균이 너무도 무식한 것이 우습기도 하다’, ‘1597년 5월 8일, 음흉한 원균이 편지조문을 했다’, ‘1597년 6월 25일, 원균이 적은 한 놈도 못 잡고 먼저 두 장수를 잃었다’.

일부에 불과하지만 얼마나 원균을 싫어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과 원균, 이 둘을 지켜보던 선조가 ‘두 사람은 물과 불의 상극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매끄러운 관계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건 좋지 않은 태도라 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면모이자 진짜 일기답다. 우리도 누군가가 싫을 때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털어 놓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지 않던가. 이처럼 이순신 장군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난중일기는 국보 제76호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시의 일기 어느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일기
1938년 7월 4일
아기의 이름은 ‘제시’라고 지었다.(···)
우리 아기 또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능력 있는 한국인으로 활약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었다.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한다. 우리 제시!

난리통에도 사람은 희망을 놓지 않고 사랑을 하며 새로운 생명을 꽃피워낸다. 인류의 역사가 이어질 수 있는 건 다 이 때문이다. ‘제시의 일기’도 이와 같은 연장선이라 할 수 있겠다. ‘제시의 일기’는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중국에서 맏딸 ‘제시’를 낳으며 1938년부터 1946년 환국 시까지 8년간 번갈아가며 기록했던 육아일기다. 딸 제시를 키우면서 느낀 일상의 기록과 딸의 성장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타향살이의 아픔, 조국 해방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1938년 7월 4일, 아기의 이름은 ‘제시’라고 지었다. 집안의 돌림자가 ‘제’자인데 ‘제시’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영어 이름이다.(…)아기가 자랐을 때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기 또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능력 있는 한국인으로 활약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었다.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한다. 우리 제시!’ 이름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라고 한다.

제시의 일기
사진출처: «제시의 일기» ©우리나비 출판사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부모는 아이의 밝은 미래를 소망하고 있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들 교육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 또한 어느 시대의 부모와 마찬가지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1942년 6월 30일, 다른 것보다 이곳 한국 엄마들에게는 아이들의 영양과 교육 문제가 근심의 대상이다.(…)우리 아이들의 모국어는 본국에서 자라는 애들에 비해 손색이 없고, 가정 교육만은 시간 나는 대로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그래서 광복된 조국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본국의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제시의 일기’에는 결혼기념일을 까먹은 남편의 멋쩍음, 잃어버린 구슬이 생각나 꿈에서까지 잠꼬대를 하는 제시의 모습 등 시대만 달랐지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역사의 파란 속에서 찾아오는 너무나 소소한 순간들이 이 부부에게는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제시의 일기 가족사진
사진출처: «제시의 일기» ©우리나비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