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 필요 없고 침대에 눕고 싶다’라는 마음만이 간절하다.
이런 마음은 무거운 칼과 방패를 아무렇지 않게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트로이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쟁 후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담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보면 오디세우스의 종착점은 그의 침대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집.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떨어졌기 때문일까. 오디세우스의 아내는 그가 진짜 남편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침대를 옮겨줄 수 있나요?” 이에 오디세우스는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침대는 수천 년 동안 자라 굵은 올리브나무 그루터기를 그 자리에서 그대로 깎아 만들고, 주변에 벽을 쌓아 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땅속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침대를 옮기라니. 이 에피소드는 작은 해프닝처럼 느껴지지만 여기서 침대가 가진 심오한 의미가 있다. 침대는 삶의 기반이다.
긴 여정을 지나오면서 막강한 체력을 자랑하는 전쟁 영웅은 산전수전을 겪는 동안 틈틈이 잠을 청한다. 잠만큼 원초적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욕구도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디세이아>의 주제는 결국 안식처에 대한 갈망이며, 그가 무수한 위험을 감수하며 이겨낸 것은 자기 자리, 즉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온 밤의 여신 닉스와 암흑의 신 에레보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어떤 신이 태어날까? 잠의 신 히프노스다. 이 히프노스는 최면을 뜻하는 영단어 히프노시스(hypnosis), 수면제를 의미하는 히프노틱(hypnotic)의 어원이며, 불면증을 뜻하는 단어 인솜니아(insomnia)는 히프노스의 로마식 이름인 솜누스(somnus)에서 유래했다. 히프노스는 잠의 신답게 빛도 소리도 들어오지 않는, 그야말로 잠자기 딱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있는 어두운 동굴에서 산다. 이곳에는 ‘망각의 강’이라 불리는 레테의 강이 흐르고, 동굴 입구에는 양귀비를 비롯해 기타 최면을 유도할 수 있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 때문에 양귀비는 히프노스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히프노스는 늘 잠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고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최면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어려움에 처한 인간들을 돕는 등 마음씨 착한 신으로 여겨지는데, 피로한 사람에겐 휴식을 주고 고민 많은 사람에게는 잠을 자게 하여 고통을 덜어주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나 힘든 날 모든 걸 잊고 잠에 빠질 수 있는 건 어쩌면 잠의 신 히프노스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히프노스에게는 쌍둥이 동생이 있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 이 쌍둥이 형제는 늘 함께 잠들었는데, 잠의 신과 죽음의 신이 함께 있는 건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안심하기 위한 위안 방안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위안은 이후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가 죽음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연구하는 시작이 되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는 잠을 자야 한다. 먹고 먹히는 야생의 세계에 살고 있는 동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바닥에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집에 있는 반려동물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들도 있다는 사실! 긴 목과 다리가 매력적인 기린은 1~2시간 넘게 자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눈을 뜨고 걸으면서도 잘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기린이 지금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기린의 독특한 수면방법 덕분에 다른 동물들은 마음 편하게 잠들 수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생존을 위해 협력관계를 맺고,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한다. 그중 기린은 큰 키를 이용하여 망을 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엄습해 오는 불안한 기운을 예측하고 알려준다.
말 또한 서서 자는 동물 중 하나다. 힘줄과 인대가 정교하게 맞물린 두 앞발의 지탱 기관이 작동하고, 뒷다리는 필요한 뼈들이 맞물릴 때까지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어 고정시킨다. 이 때문에 다리가 꺾여 자다 깨는 일은 없다. 하지만 가끔 고정이 ‘너무’ 잘 되어 풀리지 않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모두들 오늘 밤, 잠 푹 자고 내일 아침 아무런 문제 없이 수월하게 고정이 잘 풀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