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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8호

어서 오세요
잠의 이야기 세계로

사유의 시간
글. 편집실 참고도서. 《잠의 쓸모》,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

하루의 가장 마지막 일과인 잠.
피곤할 땐 그 무엇보다 잠이 가장 절실하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잠은 기본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욕구이다.
그런 만큼 잠에 대한 이야기도 참 많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한다.
잠의 이야기 세계로 빠져들어 가보자.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 필요 없고 침대에 눕고 싶다’라는 마음만이 간절하다.

이런 마음은 무거운 칼과 방패를 아무렇지 않게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트로이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쟁 후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담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보면 오디세우스의 종착점은 그의 침대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집.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떨어졌기 때문일까. 오디세우스의 아내는 그가 진짜 남편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침대를 옮겨줄 수 있나요?” 이에 오디세우스는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침대는 수천 년 동안 자라 굵은 올리브나무 그루터기를 그 자리에서 그대로 깎아 만들고, 주변에 벽을 쌓아 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땅속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침대를 옮기라니. 이 에피소드는 작은 해프닝처럼 느껴지지만 여기서 침대가 가진 심오한 의미가 있다. 침대는 삶의 기반이다.

긴 여정을 지나오면서 막강한 체력을 자랑하는 전쟁 영웅은 산전수전을 겪는 동안 틈틈이 잠을 청한다. 잠만큼 원초적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욕구도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디세이아>의 주제는 결국 안식처에 대한 갈망이며, 그가 무수한 위험을 감수하며 이겨낸 것은 자기 자리, 즉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잔다는 건 결핍과 욕망의 스위치를 잠깐 끄고
생명력을 충전하는 것.
잡념을 지우고 새로운 저장장치를 창작하는 것.
쓰라린 일을 겪고 진창에 빠져 비틀거려도
아주 망해버리지 않은 건 잘 수 있어서다.
- 에세이 <아무튼, 잠> 중에서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온 밤의 여신 닉스와 암흑의 신 에레보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어떤 신이 태어날까? 잠의 신 히프노스다. 이 히프노스는 최면을 뜻하는 영단어 히프노시스(hypnosis), 수면제를 의미하는 히프노틱(hypnotic)의 어원이며, 불면증을 뜻하는 단어 인솜니아(insomnia)는 히프노스의 로마식 이름인 솜누스(somnus)에서 유래했다. 히프노스는 잠의 신답게 빛도 소리도 들어오지 않는, 그야말로 잠자기 딱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있는 어두운 동굴에서 산다. 이곳에는 ‘망각의 강’이라 불리는 레테의 강이 흐르고, 동굴 입구에는 양귀비를 비롯해 기타 최면을 유도할 수 있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 때문에 양귀비는 히프노스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히프노스는 늘 잠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고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최면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어려움에 처한 인간들을 돕는 등 마음씨 착한 신으로 여겨지는데, 피로한 사람에겐 휴식을 주고 고민 많은 사람에게는 잠을 자게 하여 고통을 덜어주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나 힘든 날 모든 걸 잊고 잠에 빠질 수 있는 건 어쩌면 잠의 신 히프노스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히프노스에게는 쌍둥이 동생이 있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 이 쌍둥이 형제는 늘 함께 잠들었는데, 잠의 신과 죽음의 신이 함께 있는 건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안심하기 위한 위안 방안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위안은 이후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가 죽음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연구하는 시작이 되었다.

< Sleep and His Half-Brother Death >_John William Waterhouse

잠이 고통을 흡수해준 덕분에 아침이면
‘사는 게 별건가’ 하면서
그 위험하다는 이불 밖으로 나올 용기가 솟았다.
잠은 신이 인간을 가엾게 여겨서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 에세이 <아무튼, 잠> 중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는 잠을 자야 한다. 먹고 먹히는 야생의 세계에 살고 있는 동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바닥에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집에 있는 반려동물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들도 있다는 사실! 긴 목과 다리가 매력적인 기린은 1~2시간 넘게 자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눈을 뜨고 걸으면서도 잘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기린이 지금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기린의 독특한 수면방법 덕분에 다른 동물들은 마음 편하게 잠들 수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생존을 위해 협력관계를 맺고,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한다. 그중 기린은 큰 키를 이용하여 망을 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엄습해 오는 불안한 기운을 예측하고 알려준다.

말 또한 서서 자는 동물 중 하나다. 힘줄과 인대가 정교하게 맞물린 두 앞발의 지탱 기관이 작동하고, 뒷다리는 필요한 뼈들이 맞물릴 때까지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어 고정시킨다. 이 때문에 다리가 꺾여 자다 깨는 일은 없다. 하지만 가끔 고정이 ‘너무’ 잘 되어 풀리지 않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모두들 오늘 밤, 잠 푹 자고 내일 아침 아무런 문제 없이 수월하게 고정이 잘 풀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