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2024년 1+2호

김현욱 아나운서 배경
말로
복 털어내지 말아요
김현욱 아나운서
CU가 만난 사람
글. 하경헌 사진. 에이치이엔티 제공
말로

복 털어내지
말아요

김현욱 아나운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의 중요성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은 없다. 조금 더 표현을 보태자면, 말은 성격을 만들고 인성을 만들며 그 사람의 미래를 만든다. 더욱더 비대면의 생활이 굳어진 요즘, 말의 중요성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말로 먹고살았고, 많은 사람에게 말문이 틔게 해주는 김현욱 아나운서의 조언이 꼭 필요한 때다.

김현욱 아나운서 프로필사진


비대면 사회,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

2000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한 김현욱 아나운서는 2011년 6월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전업 방송인으로 나섰다. 그는 현재 2010년에 설립된 아나운서(주)에서 스피치 강의를 하고 있다. 원래 방송인이 꿈인 이들의 다양한 입사 과정을 준비하는 직업전문학교의 성격이 짙었지만, 최근에는 말의 중요성을 전반적으로 교육하는 언어교육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다. 과거에는 아나운서 준비생들이 많았던 풍경이 지금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한 친구가 최근에 의대에 합격했어요. 3월에 입학 하는데, 12월에 학원을 찾은 거죠. ‘의대생인데 방송을 준비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럴 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의사가 되면 환자를 상담하고 진료하는데, 그에 맞는 말하기를 배우고 싶다는 거죠. 물론 의학적인 전문지식은 학교에서 배우겠지만 소통을 위해 학원에 왔다는 거예요. 이른바 ‘지식의 저주’라고 하죠. 더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대화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의 사례처럼 ‘스피치’란 상대의 위치에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습니다.”

2020년부터 2~3년간 한국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코로나19의 영향은 사람들의 말하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회 각 분야에서 비대면의 기조가 강화되다 보니, 많은 사람이 직접 대면해서 대화를 나누거나 다수의 사람 앞에 나서 직접 이야기하는 기회가 줄었다. 그러다 보면 문자나 모바일 메신저 등 ‘텍스트’를 통한 대화가 늘어나는데, 이는 정확한 표현의 뉘앙스를 전하기 어렵다. 김현욱 아나운서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으로 문자도 보내보라”라고 조언한다. 듣는 상대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말로 복 털어낸다고 하죠? 말을 통해 있던 복도 쫓아내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경우가 많죠. 대화를 교류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특징을 보면 눈치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아요. 사실 이 사람에 대해 꺼리는 신호를 주변의 많은 사람이 당연히 보낼 것 같은데 이러한 비언어적 신호를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눈치도 없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의중인 김현욱 아나운서

“기본적으로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고, 잘 듣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말하기의 시작이 됩니다.”

말의 준비보다는, 마음의 준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사람들처럼, 정말 이야기를 예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반대다. 말 자체의 어투나 어감, 말의 톤도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감정의 교류, 즉 교감이다.

“말을 예쁘게 하는 분들은 리액션이 좋습니다. 이러면 말을 더 해주고 싶어지죠. 상대의 말을 더욱 끌어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액션을 잘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수려한 표현을 쓴다, 발음이 좋다는 등의 것은 기술적인 부분에 한정돼 있죠.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가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고, 잘 듣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말하기의 시작이 됩니다.”

직장과 학교 또는 그에 준하는 수많은 사회생활. 우리는 ‘말로 복을 털어내는 사람들’의 예를 많이 본다. 하지만 필수불가결한 경우 이들의 횡포(?)를 어쩔 수 없이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과 일로 얽혀있거나 위계에 있어서 낮은 경우다. 직급, 권력을 빌미로 곤란한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세련된 대처가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곤란한 상사와 말하게 된다면 말을 듣는 중간보다는,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을 한정하는 것이 좋은 예죠. ‘제가 이후에 일정이 있으니, 언제까지 업무지시를 해주시면 좋겠다’는 식이죠. 시간을 정하게 되면 상대가 그 한계를 알기에 장황한 말을 하기 힘듭니다. 굳이 만나서 대화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관계를 줄이거나, 빈도를 줄이면 소원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유로운 사람이 말도 잘한다

대화에서 교감보다 중요한 게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즉, 사람 사이의 정적을 없애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1 대 1로 대화하거나, 여러 사람과 대화할 때 이 정적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부분은 대화를 듣는 사람의 태도 변화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내면 변화가 더 중요하다.

김현욱 아나운서는 “긴장과 떨림이 모두 일상의 감정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실 방송을 오래 한 저 같은 사람도 일정 부분은 긴장을 피할 수는 없어요. 단지 많은 훈련을 통해 이 긴장감을 익숙하게 만드는 거죠. 아무리 긴장하지 말자고 해도 생방송 같은 곳에서는 실수하기 마련이에요. 자신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면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에게 시작하는 말로 자신의 긴장을 고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이렇게 많은 분 앞에서는 긴장이 됩니다’하는 말은 듣는 사람의 안도를 부르기도 하죠. 자주 말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이라면, 가족 등 편한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말을 해보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도 좋습니다.”

리액션을 잘하고, 아이스 브레이킹을 잘하더라도 하지 않아야 할 말을 잘 걸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김현욱 아나운서는 이를 ‘상황통제력’이라고 표현한다. 때로는 정확한 표현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며, 하얀 거짓말이라고 불리는 말들이 상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균형을 잡고 움직이는 것이 상황통제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

“현실적인 방법은 말을 시작하기 전 1초만 쉬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생각한 말을 바로 하면 실수가 되곤 해요. 1초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를 쉬면 몇 개의 필요 없는 말이 걸러질 수 있습니다.
전화의 경우에는 통화가 끝난 후 3초 정도 여유를 갖고 끊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