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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10호

꿀,소금,고추

한국인이 사랑하는 단짠맵
달고, 짜고, 매운 이야기

사유의 시간
글. 편집실 참고도서. 매거진 «F» honey, 도서 «때로는 짜고 때로는 쓴 역사 속 소금 이야기», KBS 〈역사 스페셜〉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
그런 만큼 우리 한국인은 참 강한 민족이다.
달고 짜고 맵고. 혀끝에 닿는 순간부터 강하게 느껴지는 맛을 사랑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단짠맵, 즐거운 날 한상 거하게 차려 먹을 때도 단짠맵.
이 맛들이 없는 우리의 식탁은 상상할 수 없다.

일본에 꿀을 전한 사람은 백제의 왕자

‘단맛’하면 꿀을 빼놓을 수 없다. 꿀의 80%는 당분인데, 우리 몸에 흡수가 잘 되는 당분이어서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꿀은 단맛을 내기 위해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한 감미료다. 사람이 벌에게서 꿀을 얻은 역사는 길게는 1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24년 발렌시아 사람인 하이메 가리 이 포치는 동네에 있는 동굴 쿠에바 데라 아라냐를 탐험하다 벽화 하나를 발견했다. 여성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벽에 매달려 벌꿀을 따는 그림이었다. 조사 결과 이 그림은 약 8,000년 전에 그린 것으로 밝혀졌다. 덕분에 이 벽화는 지금까지도 벌꿀 채취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사료로 인정받는다. 발렌시아는 여전히 스페인 벌꿀의 명산지이기도 하며, 스페인 꿀벌의 3분의 1이 발렌시아에서 살고 있다.

꿀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에 꿀을 전달한 사람이 백제의 왕자라는 것이다. 일본 역사상 양봉 관련 최초의 기록은 643년 〈일본서기〉에서 볼 수 있다. 백제 사람 여풍이 벌집 4개를 가져왔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여풍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풍왕 부여풍을 말한다. 그는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기 위해 일본에 30년간 살았다. 일본에서는 그를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보았고, 조선의 안정복도 〈동사강목〉에서 그를 마지막 왕이라고 간주한다.

다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중앙정부가 없는 상황에서 즉위식을 치르지 않은 부여풍을 왕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식 왕위에 관계없이 그는 일본 열도에 벌꿀을 전파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양봉의 신 아리스타이오스.
제우스도 꿀을 먹고 자란 것으로 나온다.
이것을 증명하듯 그리스인들은 꿀을 ‘신들의 식량’이라 불렀고
로마인들은 ‘하늘의 이슬’이라고 생각했다.

무화과 브리치즈 구이

무화과 브리치즈 구이

살짝 구운 바게트와 함께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는 무화과 브리치즈 구이

재료 : 무화과 3개, 브리치즈 1통, 호두 30g(또는 견과류), 어린잎 채소 적당량, 꿀

① 브리치즈는 통으로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160℃에서 5분간 굽는다.
② 잘 익은 생무화과를 세로로 4등분 한다. 잎채소는 흐르는 물에 씻은 뒤 체에 밭쳐 물기를 없앤다.
③ 호두는 마른 팬에 살짝 볶은 뒤 식혀둔다.
④ 접시에 한 입 크기로 자른 브리치즈를 담고 무화과, 잎채소, 호두를 차례대로 올린 뒤 꿀을 뿌려 마무리 한다.

세종대왕의 백성 사랑이 담긴 소금

소금은 절대권력자의 권위와 힘을 상징했다.
소금 염[鹽]자를 풀어헤치면,
신하[臣]가 소금 결정[鹵]을 소금 그릇[皿]에 두고 지키는 뜻이라 한다.
서양도 동양과 다르지 않다.
잘 알려졌듯이 샐러리(salary)의 어원은 소금(salt)이며,
로마 병사는 월급으로 소금을 받았다.

소금과 관련해서 세종대왕의 일화 하나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염전이 없어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얻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소금 만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소금 만드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건장하고 힘이 셌다. 또한, 바닷물을 끓일 때 필요한 나무를 베러 섬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바닷길도 잘 알았다. 이렇게 힘도 세고 바닷길도 잘 알고 있는 소금 만드는 사람들은 전쟁이 나면 웬만한 병사들보다 더 큰 활약을 하기도 했다.

조선 초, 왜구(일본 해적)들이 날뛰던 때였다. 세종대왕은 대마도 정벌에 나섰는데, 그때 당시 활약했던 사람들이 바로 소금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왜구들 사이에서 조선의 소금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소문이 자자했고, 이들이 나섰을 때 왜구들은 혼비백산했다.

대마도 정벌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충청도 감사가 세종대왕에게 문서를 하나 올렸다. ‘소금 만드는 사람들이 대마도 정벌에서 큰 공을 세운 것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대마도에 가느라 소금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나라에 바치는 소금의 양을 절반으로 줄여 주시기 바랍니다.’

소금

세종대왕이 문서를 보고 한 말은 “절반으로 줄여달라고? 소금 만드는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참으로 큰일을 했구나. 그러니 올해는 소금을 하나도 바치지 않아도 되느니라.”

하지만 신하들의 생각은 달랐다. “소금을 하나도 받지 않으면 나라 살림에 큰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다른 신하들도 세종대왕의 의견에 반대했다. 당시 소금은 무척 귀해 소금 값이 무척 비쌌다. 그래서 소금이 없으면 나라 살림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는데, 이 말도 일리가 있었다. 고민하던 세종대왕은 이렇게 결정했다. “그러면 대마도에 직접 다녀온 이들의 소금만 면제하도록 하거라.”

늘 백성이 먼저였던 세종대왕. 이 또한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아닐까.

독초로 의심했을 정도의 매운맛 고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매운 고추로 꼽히는 청양고추.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있지만
청양고추는 제주산 고추 품종을 태국 고추와 교배한 것을
경북 청송군과 영양군에 시험재배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송주불냉면, 실비김치, 마라탕, 불닭볶음면. 맵부심 좀 부린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다. 그 중 불닭볶음면은 누적 판매량이 40억 개가 넘고, 우리나라에서 단종되었다가 5년 만에 재출시 되었다. 스트레스 받은 날 매운 음식이 생각나는 건 실제로 매운 음식이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혀는 매운맛을 통각으로 인식하고, 뇌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진통 호르몬인 ‘엔도르핀’을 분비하는데, 이는 통증을 줄일 뿐만 아니라 기분도 좋게 해 스트레스 완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드레날린 수치도 올라가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땀 등 노폐물이 배출되면서 시원하고 개운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의 근본은 고추다. 고추는 1492년 콜럼버스가 남미에서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유럽으로 온 고추는 붉은 후추라 불리며 은과 동일한 무게로 교환될 정도로 값비싼 향신료로 여겨졌다. 그런 고추가 50년 뒤 일본에 전해졌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기록이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장수였던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에서 이 고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고추가 전해졌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고추 전래설이다.

고추

고추와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설이 하나 있다. 일본인이 쓴 〈조선개화사〉에는 일본인이 조선인을 독살하기 위해 고추를 가져왔는데, 한국인은 일본인과 체질이 달라서 오히려 그 맛을 즐기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고추가 매운맛을 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들은 독초라 인식하고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라고 극단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