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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1

<한국인 이야기>, 문학평론가 이어령

‘어부바’의 문화 유전자

창립 60주년을 맞은 신협에서 한국인의 ‘어부바’ 정서를 공감하고 나누었던 문학평론가 이어령 선생에게 나이를 초월하는 어부바 문화 유전자에 대해 물었다.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고 한국 사회의 방향을 제시해온 그의 저서 <한국인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한국인의 뿌리를 만나본다.

<한국인 이야기>는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누군인지 모른다” 라는 한국인의 공통된 질문에 대한 해답과도 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재의 근원에 대한 끝없는 탐구야말로 영성에 가닿는 방법일텐데요. ‘꼬부랑 할머니’가 탯줄과 같이 탄생 스토리를 하나로 꿰고 있듯, 박사님께서 최근 가장 주목하고 계신 다음 이야기의 흐름이 될 큰 탯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꼬부랑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태어나는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를 이어주는 탯줄처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탯줄이 존재합니다. 표면적으로 끊어져 있다하더라도 밀착형으로 이어져 있는 모태의 관계처럼 우리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인의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한국인 이야기>는 생명의 문을 여는 암호인 태명고개를 넘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출산과 어부바, 옹알이와 돌잡이 등을 거치며 12개의 이야기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유아기를 거치는 동안까지의 인생 일장 한 토막 이야기인 셈입니다. 천년만년을 이어온 생명줄처럼 한국인 특유의 문화 유전자를 만들어낸 이야기줄을 꼬부랑 할머니와 함께 풀어내는 것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책에서 챕터 ‘기저귀 고개’ 중 ‘스와들링’(태어나자마자 천으로 아기의 팔다리를 묶어 미라처럼 만드는 풍습)에 관한 부분은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 세상 밖에 나오는 순간부터 관 속에 넣어질 때까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동안 사회 제도에 매여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라면, 지금 현대인이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가장 큰 스와들링은 무엇일까요?

언어와 종교, 풍습과 기후 그리고 지정학적인 면에서 다양성을 자랑해온 유럽이지만 이곳을 오랜 시간동안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와들링’이라는 문화권인데요. 아기를 매고 묶는 ‘스와들링’이라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아기를 바로 묶어두는 이 관습은 우리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놀랍게도 지난 4,500년간 이어져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렇듯 단절된 환경에 자라온 서양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현대 사회는 생명 자체에 대한 부정이 팽배해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나의 부모와 조부모를 포함한 수많은 선조들의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나’라는 한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수많은 필연이 만들어낸 생명의 소중함을 상실한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근본적 상실이자 단절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생명이고, 애정을 담아 생명을 잉태하고 돌보았기 때문에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물건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을 두고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라고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오늘날이야말로 생명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깨닫고 출산하는 어머니들이 많다고 봅니다. 이전에 출산의 도구로 여겨졌던 여인들이 지금은 하나의 주체로 자신의 아이를 잉태하고 길러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스와들링이 있는 곳에 모성애는 없습니다. 미래사회는 스와들링 없이 헐렁한 배냇저고리를 입고 자란 한국인만이 가진 이야기의 진짜 힘이 발현되는 때가 아닐까 합니다.

어부바를 한다는 것은 옛말에 담겨있던 ‘너 좋고, 나좋고’의 정서가 녹아 독특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순간이지요.
업히는 사람과 업는 사람 사이에는 관계의 ‘상호성’이 만들어집니다.

AI, 산업혁명, 디지로그, 알파고 등과 같이 최첨단 기술을 누리고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로부터 온 아주 작은 생명의 힘을 강조하고 싶으신 이유가 있다면요.

인간과 로봇은 상호작용을 하며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도 부자간에 서로 업고 업히는 장면이 등장하지요. 서로에게 애정이 있으면 좀 더 업고 업히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게 되는 관계가 된다면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겠지요.
연인들이 서로 사랑하듯, 현대사회도 서로를 이해하고 상호 의존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미래사회의 바람직한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서양 문화가 산업화를 앞당기는데 유리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이제 한국사회가 중시하는 생명주의로 세계를 이끌 수 있는 문화를 선도할 것입니다. 물론 생활상이 변했기 때문에 예전의 어부바 문화를 고수하며 아이를 키우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유모차를 태우더라도 업는 문화의 전통을 고수하며 상호 의존하는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육아방식은 달라질 것입니다. 최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관계에 있어 전통적인 한국의 어부바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부바 고개’ 부분에서 언급하신 신협의 ‘평생 어부바’ 슬로건을 금융 소외 계층에게 언제든 따뜻한 등을 내주겠다는 철학을 한국적 정서로 담아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나이를 초월하는 어부바의 문화 유전자가 한국인에게 주는 정서적 위안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성경을 보면 아기 예수도 ‘말구유’라는 나무 상자에 따로 떨어져 눕습니다. 가까운 일본에도 아기를 등에 올리는 문화가 있지만, 엄연히 말해 그것은 한국의 ‘어부바’ 문화와는 다릅니다. 아기를 등에 끈으로 ‘묶는’ 것에 가깝지요. 한국의 포대기는 엄마의 양손이 가벼워지는 동시에 등에 업힌 아기도 몸이 자유롭습니다.

어부바를 한다는 것은 옛말에 담겨있던 ‘너 좋고, 나좋고’의 정서가 녹아 독특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순간이지요. 업히는 사람과 업는 사람 사이에는 관계의 ‘상호성’이 만들어집니다.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이고 동시에 상호성도 지니고 있는 관계가 완성되는 것이지요. 어느 한쪽만 편하고 다른 한쪽은 부담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꺼이 ‘어부바’를 하는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노사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위해 내어준 등이 한쪽만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함께 하는 ‘사이’속에 내가 있고 네가 있어야 든든하게 동행할 수 있습니다. 팔고 사는 관계 즉 소비자와 판매자의 관계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처럼 서로 의지하며 사랑의 유연성을 발휘해야합니다. 권력을 남용하기보단 서로를 보살핌으로 윈윈해 나아가는 것이 ‘업다’라는 단어와 가장 유사한 관계라고 봅니다.

2020년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신협은 한국 사회가 당면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취약계층과 서민을 품기 위한 ‘7대 포용금융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실버세대를 위한 ‘어부바효예탁금’, 고금리 대출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신협 8.15 해방대출’, 실직과 폐업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위한 ‘고용·산업위기 지역 특별지원사업’ 등 입니다. 상생과 나눔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신협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 쓰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금융권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낸 ‘어부바’라는 단어를 내세운 것을 봤을 때 오히려 제가 더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일방적인 수혜가 아니라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어부바. 단순히 취약계층을 돕는 것이 아닌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서 벗어나게 해주는 어부바.

자선은 베푸는 쪽에 부담이지만 서로가 발전하는 어부바 정신은 신협을 통해 도움을 받은 한 사람이 또 다른 이웃을 업을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보살핌을 통해 성장하듯이 금융권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혜택을 베푼다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어주며 사랑과 정이 오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배와 의존, 흡수와 종속이 아닌 사랑과 애정 속에 서로 업고 업히는 관계, 이것이 진정한 상생입니다. 신협이 가진 어부바 정신이 계속해서 이 사회의 희망과 행복의 근원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