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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12호

몽당연필
연필은 여전히
필기구의 큰 형님이다
연필 뮤지엄
CU 핫플레이스
글.손은경 사진.고인순

‘연필은 기록을 남긴다. 문명을 일으킨 문자 생활은 필기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많은 필기구가 나타나고 사라져 갔지만 연필은 여전히 필기구의 큰 형님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자판에 익숙해져 오랫동안 소홀했던 연필 큰 형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인사드리러’ 갔다.
조용한 바닷마을 강원도 묵호에 자리한 연필 뮤지엄이다.

거대한 연필 조형물이 있는 박물관 풍경
박문관 전시실,명사들의 연필을 소개하는 전시실
연필 수집이라는 기록의 장소

연필 뮤지엄은 한 사람의 깊은 연필 사랑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연필 뮤지엄의 이인기 대표가 40년 동안 해외 100여 개 도시를 다니며 수집한 연필들이 진열되어 있다. 디자이너 출신이라 손에 연필을 쥐고 있는 일이 많았거니와 부피가 작아 해외에서 가지고 오기 편했던 것이 연필 수집에 한몫했다는데, 헨리 페트로스키의 «연필»이라는 책이 그의 연필 수집 열정에 기름을 부었다.

본격적인 연필 탐험에 들어가기 전, 여기서 문제 하나!

우리가 흔히 쓰는 육각형 연필의 사이즈를 아는 사람 손!

가로 18cm, 세로 0.5cm다.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이겠지만, 이런 사소한 질문에도 답을 주는 것이 2층 기획전시실이다.

우선 벽면을 따라 걸어보았다. 연필이 탄생하기까지의 제작 과정과 역사에 남아 있는 연필의 기록을 만날 수 있었다. 연필이 육각형인 이유, 연필이 지워질 수 있는 원리, 100년이 지난 연필 글씨의 기록, 지우개 달린 연필의 시초 등 생각해보지 못했던 연필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그중 어릴 적 추억을 끄집어 놓은 것이 있으니, 바로 노란색 연필이었다. ‘국민학교’ 시절, 노란 연필은 부의 상징과도 같았다. 이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모두 미국에서 친척이 사다 주었다고 할 정도로 어린 학생이 구하기 쉽지 않았는데, 그 노란 연필이 왜 그렇게 좋아 보였는지.

친구가 선심 쓰듯 하나 줘야 겨우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노란 연필이 오래전 사람들의 눈에도 좋아 보였나 보다. 최초의 노란 연필은 1790년에 설립된 체코의 명품 필기구 회사 코이누르에서 출시되었는데, 당시 찾아볼 수 없는 프리미엄 연필이었다. 다른 연필에 비해 3배나 비싼 가격임에도 코이누르의 노란 연필이 인기를 끌자 경쟁사들도 코이누르 연필처럼 품질이 좋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란색 연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깃털이 달린 연필
옛날 연필

연필은 펜만큼이나 강력한 은유이며, 깃발만큼이나 풍부한 상징성을 지녔다.
- 헨리 페트로스키

연필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거대한 노란 연필 조형물이 있다. 층 사이를 관통할 정도로 큰 사이즈다. 거대한 자태도 놀랍지만 연필에 새겨진 문구가 아주 기가 막히다.

‘연필은 지울 수 있어 유연하고, 검은 글씨로 남아 단단합니다. 연필이 없다면 우리의 시간은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연필은 순간을 영원으로 기록하고 추억이라는 큰 선물을 남깁니다.’ 이 짧은 문구 속에 기록을 남기기 위한 연필의 가치가 오롯이 담겨있다.

3층에는 수집한 다양한 연필을 빈티지, 캐릭터, 여행&도시, 디자인 등으로 분류했다. 빈티지 섹션에 1870년대 후반 시베리아산 흑연과 최상의 나무로 제작된 A.W. 파버 그레이드 연필이 고급스런 자태를 빛내고 있다.

하지만 좀 더 다이내믹한 사연이 깃든 건 바로 옆에 있는 유명 필기구 기업 파버 카스텔의 창업자인 바론 로타르 폰 파버 탄생 200주년 기념 연필이다. 한국에서 구할 수 없어 망설임 없이 영국행 비행기표를 끊고 날아가 마침내 손에 쥐었다. 수집가가 연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명사들의 연필 사랑

이곳에는 소설가 김훈, 건축가 승효상,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 88올림픽 호돌이 캐릭터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김현 등 명사가 사랑한 연필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소설가 김훈이 «칼의 노래»를 연필로 쓴 원고, 디자이너 김현이 호돌이 캐릭터를 연필로 스케치한 것을 실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귀한 것을 보다니. 특히 소설가 김훈은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연필에 진심인 사람으로 유명하다. 연필로 한자 한자 써 내려갔을 원고에서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듯했다.

연필과 세트로 따라다니는 것이 연필깎이가 아닐까.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아주 오래된 연필깎이를 볼 수 있었다. 최초의 기계식 연필깎이는 1880년대에 등장한 렘슨 연필깎이다. 마치 옛날 영화 필름을 돌리는 기계처럼 생긴 이 연필깎이는 1885년 5월 12일에 특허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시간이 쭉쭉 흐르며 형태의 변천사를 겪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연필깎이는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 출시되었다.

옛날 연필깎이
다양한 모양의 연필

가끔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
당장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다.
- 파울로 코엘료

연필 뮤지엄에 기록을 남기다

3층 한편에는 점착메모지와 연필이 놓여있고, 그 옆 벽면에는 이곳을 다녀갔던 사람들이 연필로 쓴 메모지가 붙어있다. 누군가는 방명록을, 또 다른 누군가는 이루고 싶은 소망을 적기도 했다. 이렇게 1인 1기록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그 이야기에 한 자리 보태기로 했다. ‘2023년 10월 5일, 연필 뮤지엄에서 힐링하고 감’.

한층 한층 둘러보며 어느덧 연필 뮤지엄의 마지막 4층에 도착했다. 이곳은 다양한 연필, 공책 등 소품이 진열되어 있다. 디자이너 출신이 만든 곳이라 그런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진열하지 않았다. 4층에는 작은 카페도 있다. 이곳에서 커피 한잔을 들고 야외 테라스로 나갔다. 묵호의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전시를 둘러보며 혹시나 잊어먹을까 봐 찍어둔 사진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고 가을의 청량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필사했다.

‘연필 한 자루와 꿈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 조이스 A 마이어스.

메모지가 붙어 있는 벽면

연필 뮤지엄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발한로 183-6
문의 : 033-532-1010
운영 : 10:00~18:00(매주 화요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