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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6월호

정원에서 찾은 위로와 위안
오경아 작가

오경아 작가는 16년 간의 방송작가 활동을 접고 2005년 영국으로 떠나 가든 디자인을 공부했다.
7년간의 공부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든 디자이너로 활발히 활동하며 속초에서 정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 작가를 만나 정원의 의미와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가든 디자이너로 또 후학을 양성하시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신데요.
근황은 어떠신가요?

A. 봄이라 한창 정원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현재 시공 중인 정원의 감리도 보고 있고요. 봄철에 한참 바빴는데 지금은 살짝 여유가 있어요. 덕분에 해피스토리 독자들을 뵙게 되었네요.

작가님은 방송작가로 활동하시다 정원 일을 배우기 위해 과감히 영국으로 떠나셨어요.
어찌 보면 큰 도전이었을텐데 영국으로 떠나려고 마음 먹은 까닭이 궁금합니다.

A. 방송 일을 매우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 너무 지치기도 하고 힘들었어요. 방송 일이라는 것이 글이 안 써지는 날도 있고 매일매일 같은 양의 글을 쏟아낸다는 게 힘든 일이어서 지쳐 있을 때가 있었어요. 마침 제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면서 정원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 가족사적으로는 부모님 두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변화가 많았습니다. 이때 ‘뭔가 새로운 공부를 좀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가든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하던 일을 좀 그만둘 방법으로 좋아할 것 같은 일을 해야지 했는데요, 한국에는 공부할 곳도 마땅치 않았어요. 특히, 한국에 있으면서 방송 일을 안 하기는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겸사겸사 영국으로 갔는데 막상 가서 공부를 시작하니까 이쪽 분야가 저랑 잘 맞았어요. 계속 공부하다 보니 7년 정도의 시간이 되었네요. 단순한 이유로 일을 쉬고 싶은 생각에서 찾았던 영국에서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어요.

펜을 버리고 영국에서 정원을 공부하셨어요.
정원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치셨는지요?

A. 건축 분야를 보면 건축을 시공하시는 분이 있고 디자인하시는 분 있잖아요. 정원 역시 시공 분야는 따로 있고 가든 디자이너는 정원의 밑그림을 그리고 ‘어떤 설계를 할까, 디자인을 할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아무래도 시공을 전제로 하는 디자인 분야이기 때문에 건축과 학생들이 배워야 되는 공부도 상당 부분 있고, 또 식물을 키우는 일이어서 원예과 학생들이 공부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디자인과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디자인적으로 연출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해야 해요. 이러한 것들을 모두 병행 하니 7년 가까이 공부를 끊임없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공부보다 영어가 가장 어려웠어요. 제가 영어 전공자도 아니고 직장에서 영어를 계속 쓰던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했었던 영어가 다인 상태에서 유학을 갔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영어를 극복하는 데 시간이 상당 부분 걸렸어요. 오히려 전공책자나 이런 것 보다 생활 영어가 힘들더라고요.
공부는 어렵지 않은 게 하나도 없었는데 하면 되게 재밌었어요. 디자인하는 것, 설계하는 것, 원예 일 배우는 것, 식물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 디자인적으로 색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것 등 어렵지 않은 공부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낯선 영국에서 7년간 공부를 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A. 사실 아이들에게 적성을 잘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정말 해주고 싶어요. 저는 제 적성이 뭔지 모른 채로 선생님들이 하라는 공부만 했거든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하라고 하는 교과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까지 갔지만 제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적성이 제일 잘 맞았던 일은 글을 쓰는 것과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하는 일이었는데 학창시절 내내 몰랐던 거죠.
영국에 가서 막상 뭔가 끌려서 이 분야를 결정하기는 했지만 ‘이게 적성에 맞는다는 거구나’를 느꼈어요. 세상에 쉬운 일이 없는 만큼 어떤 일을 하든 다 어려운데 적성에 맞으면 좀 극복이 되더라고요. 힘들어도 재밌으니까 또 해보고 밤을 새도 재미있으니 또 도전하게 되었어요.

돌아와 정원 문화를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처음 한국에 돌아 왔을 때와 지금의 국내의 정원 문화는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A. 최근의 정원 문화는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정원이 우리가 옛날에 알고 있던 전통 정원이 아니구나’라는 개념도 많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간 서양인들이 주로 즐겼던 정원 문화를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좀 더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코로나19로 갇혀 지내는 생활을 하다 보니까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집안에서도 식물을 키우면서 외부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시는 듯 해요. 얼마 전에 제가 원고 쓰느라고 조사를 잠깐 했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이후에 정원 문화가 급성장하고 있었어요. 아직 우리나라는 출발점이기는 하지만 제가 영국에서 돌아온 직후에 비하면 가든디자이너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어요.

오경아의 정원학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A. 오경아의 정원학교는 멤버십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참여자는 매 연말에 모집해요. 연말에 모집을 해서 한 해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원예에 대한 강의를 해요. 정원 가꾸고 식물 어떻게 하면 잘 케어할 수 있나 등이 강의 내용입니다. 매달 만나다 보니 멤버로 같이 활동하시는 분들과 매우 친해졌어요. 올해는 멤버십이 마감이 됐고 2023년에 또 멤버십을 모집할 예정이에요, 기수마다 멤버들은 대략 한 열다섯 명에서 스무 명 정도입니다.

‘정원생활자’에서 정원은 ‘희망을 주는 곳’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의미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많은 분들이 제 직업이 스트레스가 없는 줄 아세요. 그렇지 않아요. 직업적으로 하는 일도 마찬가지고 생활의 스트레스는 언제나 똑같은 강도로 오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정원에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요.
뭔지 모르게 받았던 스트레스,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은 늘 오잖아요. 그러한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들이 정원에서 일하는 사이에 좀 많이 완화되고 풀어져요. 어떤 요소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제 마음이 별로 좋지 않을 때 저는 주로 정원에 있는 것 같아요. 정원 일을 하다보면 내 속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완화되는 느낌입니다. 그러면서 사는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게 되고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나중에는 그렇게 고민할 요소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에서는 정원과 엄마를 연결지으셨어요.

A. 그 책의 제목은 사실 제가 정한 게 아니고 출판사에서 정했어요. ‘작가님 글 계속 읽다 보니까 엄마라는 키워드가 자꾸 보여서요’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어요.
책 속의 정원은 저의 엄마를 떠올린 것이기도 하겠지만 현재 제가 엄마의 포지션이기도 하니까 저의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아요. 정원 속 엄마는 돌아가신 우리 엄마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고, 저희 두 딸들의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어떤 여성의 모습일 수도 있지요. 제 글 속에서 녹아져 있었던 엄마라는 잔상을 편집자가 잘 캐치한 것 같아요.

최근 많은 분들이 식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초보 식집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지요?

A. 식물을 왜 키우는지에 대해서 조금 달리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식물을 키우는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안 키우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금 마음을 가볍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식물을 우리 곁에 두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케어도 해주고 관리도 하지만 식물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 원인이 나의 잘못일 수도 있고, 식물 자체가 약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환경에 안 맞아서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결국 나를 위해서 들여놓은 식물이기 때문에 마음을 가볍게 가지실 필요가 있어요. 열심히 했는데 원인이 뭘까 생각해보는 것도 좋아요. 많은 분들이 식물이 인간보다 오래 살 거라는 오해를 하세요. 식물의 한 7~80%는 인간보다 수명이 짧아요. 식물을 키우는데 부담 갖지 말고 도전해 보세요.

작가님에게 정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저는 정원이 그냥 제 삶에 위로를 주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품고 있는 많은 걱정들이나 이런 것들을 조금 완화시켜주는 완충 공간이고요. 그게 좋아서 여러 사람들한테 소개하는 중이에요. 인터뷰를 하고 강의를 하는 것도 좋은 문화를 많이 알리고 싶어서이고요.

이번 해피스토리의 주제는 ‘성취를 위한 도전’입니다. 작가님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는지 또 그 도전을 통해 얻으신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도전을 왜 할까를 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많은 도전도 의미가 있지만 그러한 도전은 좌절을 동반해요. 내가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가, 무엇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한가, 혹은 이거 실패해도 괜찮은가 이런 것들을 조금 생각해 보고 그 방향으로 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봐요.
제가 영국으로 갔을 때도 ‘공부해서 내가 한국 제1호 가든 디자이너가 될 거야’ 라고 생각했으면 공부가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1년 정도 다녀오는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공부가 재미있어서 길어진 거지요. 작은 도전을 하면서 그 도전이 나와 잘 맞는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뭔가를 해보려고 할 때 내 뒤에서 등을 살짝 살짝 밀어주는 듯한 느낌이 오는 때가 있어요. 마치 뒤에서 누가 바람을 살짝 살짝 불어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 때가 내 인생에 변화가 오는 때인 것 같아요.

‘평생 어부바’가 신협의 슬로건이에요. 오경아 작가님께서 따뜻하게 어부바해주고 싶은 분이 있으실까요?

A. 저에게는 가족이 가장 소중한 단위에요. 가족 단위에서 좀 더 가면 저랑 같이 일하는 식구들이 또 저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고, 저랑 인연 맺은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마지막으로 <해피스토리 신협> 독자들을 위해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요즘에 드는 생각은 불행이라는 것이 권선징악도 아니고 인과응보도 아니고 그냥 어느 날 랜덤으로 그냥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요. 때문에 ‘오늘도 즐겁고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라고 마음을 많이 갖고 있어요. 그래서 너무 많은 목표로 삶의 짐을 지울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오늘 하루 행복했으면 좋고 내일도 행복하면 되는 거고 그렇게 오늘 행복한 일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