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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 피플

조합원과 함께 한
시간을 돌아보다
2021년은 신협 설립 61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에 해피스토리는 ‘1’이라는
수에 초점을 맞춰 신협 입사 1주년, 11주년, 21주년, 31주년을 맞는
신협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1주년 직원

강서신협

정지웅 서기

입사일 2020. 04. 01

신협 100주년도
함께 하고 싶어요
신협의 61주년을 이렇게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어려운 이웃들을 어부바하며
지역사회와 함께 상생 발전하는 신협이 되기를 바랍니다.
100주년도 함께 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2020년 4월에 강서신협에 입사한 정지웅 서기는 현재 수신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조합원과의 만남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는 그는 입사 1년과 신협 61주년을 동시에 맞으며 신협과 동반성장하는 직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Q _ 입사 1년이 되셨습니다. 신협에 입사를 결심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금융업에 종사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신협이 금융업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상생한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고, 조합원 제도로 운영되어 지역사회 주민들과 소통하며 끈끈한 정을 나누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조직이란 생각이 들어 입사를 결심했습니다.

Q _ 첫 출근 당시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기분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입사했던 시기는 그야말로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대구는 신천지사태로 인해 코로나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는 ‘대구봉쇄령’이라는 단어가 오를 정도로 대구사람은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는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면접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 하는 행사에 대구사람이라는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에 위치한 강서신협에 입사 지원을 하였으며, 서류 합격통보와 함께 면접 안내를 받았을 때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면접을 진행하였고,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위축되어 있을 때 강서신협 실무책임자께서 “현재 대구가 굉장히 심각하고 우리도 대구사람을 면접에 부르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으로 인한 차별을 두지 않으려 했고 누구에게나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많은 고민 끝에 면접에 부르게 됐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 들은 이 한마디가 저에게는 굉장히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편견 없는 시각으로 잘 봐주신 덕분에 저는 면접에서 합격하였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외출에 제약이 있었던 저에게 거짓말처럼 설레는 첫 출근날이 다가왔습니다.

Q _ 신협에서 근무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보람 있으셨던 일이 있으신지요. 혹은 직장생활 중 느끼는 소소한 행복에는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대단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에서 보람을 느꼈던 적이 많습니다. 조합원분들의 감사하다는 인사와 칭찬을 전해주실 때, 긴 시간 어려운 업무를 도와드린 후 고맙다며 사다 주신 음료수를 직원들과 나눠 마실 때 등과 같이 사소한 것에서 보람과 소소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11주년 직원

장안신협

김난희 대리

입사일 2010. 02. 01

신협 없이는 못 살아요
안 그러고 싶었지만, 신협(너) 없이는 못살게 되었습니다.
잠깐 만나려고 했는데 지금까지도 저와 함께 있네요.
항상 곁에 있는 그림자와도 같아요!
장안신협에 2010년 2월에 입사하여 어느덧 11년차가 된 김난희 대리는 입사 후 7~8년 동안 수신업무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셋째 출산 후 복귀하여 기획 총무라는 새로운 업무를 맡아 조합의 홍보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Q _ 신협에 입사를 결심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입사 당시에는 신협에 대해 잘 몰랐지만 어떠한 곳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신협에 대해 알고 난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협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서 입사를 결심하였습니다.

Q _ 근무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보람 있으셨던 일이 있나요?

수신팀에 있었을 때 조합원들을 마주하는 일이 많았는데 저를 기억해주시고,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출산 후 복귀했을 때에도 저를 생각해주시는 조합원님들 덕분에 업무가 즐거웠습니다. 조합원들이 자신의 간식을 나눠주셨던 기억이나 조합원들의 경조사를 함께 하였던 기억 등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 것 같습니다.

Q _ 입사 11주년이 되셨는데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아요.

11년 전 첫 출근의 새로운 시작처럼, 다시 새로운 시작입니다. 10년 후에도 지나온 시간처럼 열심히 생활하여 우리 신협도, 모든 신협도 지금보다 두 배로 성장하고, 발전하여 또 나의 이야기를, 신협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며칠 전에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듣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조합원께서 “난희씨 애 셋 낳은 사람 맞아?” 라고 묻더라고요. 이 맛에 오늘도 저는 사람 냄새나는 나의 삶의 터전으로 출근을 합니다.

Q _ 신협人으로서 자부심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직장생활을 하는 워킹맘으로 신협에 다니고 있는데 아이들이 밖에서 신협의 어부바 로고송을 흥얼거리며, 엄마가 신협에 다닌다고 말해줄 때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Q _ 신협에 대한 애정표현도 해주세요! 더불어 61주년 축하 말씀도 부탁드릴게요.

중앙회, 조합직원들 모두 고생해서 오늘의 신협의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고생하셨고, 축하드립니다. 10년 후, 20년 후 지금보다 더 잘 될 것이기에 지금의 축하 인사는 간단히 하겠습니다. ^^

Q _ 근무하시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지요.

다른 업무와 달리 기획총무 분야는 업무방법서가 없습니다. 총무방법서를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신협직원, 조합원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뜻깊습니다.
21주년 직원

아주대의료원신협

김설호 상무

입사일 2000.04.10

신협의 경쟁력은
‘정’입니다
의료원을 퇴직하시는 분들이 마지막으로
조합 거래를 정리하시고 가실 때, 신협이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쉽다는 끝인사를 남기고 가실 때 보람을 느낍니다.
직장조합인 아주대의료원신협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설호 상무는 2000년 4월 신협에 입사했다. 2018년부터 아주대의료원신협의 실무책임자를 맡아 일하고 있는 그는 카카오톡 비즈니스 채널을 개설하는 등 조합원들과의 생생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노력 중이다.

Q _ 첫 출근 당시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기분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출근 당시 직장조합인 만큼 사무실 같은 분위기에 옆 사무실에 구판장과 자판기를 운영하는 특별회계 사무실이 함께 붙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첫 출근을 한 신용사업부는 의료원 직원으로 신협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계신 사무국장이라는 실무책임자와 직원 한분이 근무하고 있는 조그마한 사무실이었습니다. 지역조합과 같이 조합원들의 왕래가 잦고 제대로 된 창구의 모습과는 달리 예전의 시골우체국 같은 분위기였어요.

Q _ 근무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소소한 행복에는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당시, 조합이 전산화 및 금융결제원 가입 전이라 현재의 윈도우시스템이 아닌 리눅스 운영체제를 사용했었죠. 물론, 타행이체 등도 그 때 당시 동남은행전산을 대여하여 사용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후, 2002년부터 신협중앙회에서는 윈도우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신세대전산화를 시작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신협도 금융결제원에 가입되어 본연의 금융기관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합도 그 당시 신협전산망 가입을 위해 장비는 갖추었으나 매년 부담해야 하는 전산분담금, 전산기금 등으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신협이지만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인프라임을 강조하며 실무책임자를 비롯하여 이사장을 설득해 마침내 직장조합으로서는 다소 빠르게 금융결제원과 신협전산망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조합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지금은 주거래 조합원 1,000여 명(참조합원 기준)의 튼튼한 맨파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총 자산 1,000억 원을 앞두고 있는 만큼 당시의 결정이 대형 조합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을 만들었던 것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Q _ 신협에 대한 애정표현도 해주세요! 더불어 61주년 축하 말씀도 부탁드릴게요.

신협은 참 ‘정’이 많은 조직입니다. 그러한 정이 신협의 경쟁력이라고 봅니다. 직원들이 조합원에게 행복을 주며 보람을 느끼는 곳이 신협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신협인 선배님들이 일구어 놓은 신협의 정신을 앞으로도 계승·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신협의 61돌 축하 합니다. 앞으로도 건승하길 기원합니다.
31주년 직원

대전우리신협

양래숙 상무

입사일 1990.08.10

앞으로도 조합원을
위한 신협이 되길
신협은 저에게 직장이자 친구이고
소통의 장이며 저를 더욱 발전시켜주는 원동력입니다.
신협과 함께 하였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양래숙 상무는 1990년 신협에 입사했다. 현재는 대전우리신협에서 직원들의 사기 증진을 위한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직원들과의 즐거운 소통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입사 후 31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신협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 양래숙 상무의 말을 들어보자.

Q _ 첫 출근 당시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기분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벌써 31년이나 지난 이야기네요.(웃음) 그런데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31년을 일하게 해준 원동력도 첫 출근 당시의 행복했던 마음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처음 신협 입사가 결정되고 출근을 준비할 때 집에서 거울을 보며 “열심히 하자, 많이 웃도록 노력하자” 했던 저의 결심이 생각이 납니다. 사실 그날 출근해서 신협 직원들과 인사하고 돈 세는 연습만 했을 뿐인데도 행복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네요. 그땐 선배님들이 계신 자리에 앉아있을 저의 모습을 혼자 상상하고 좋아했어요.(수줍)

Q _ 입사 31주년이 되셨는데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아요.

오래 직장을 다니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연차가 오래되고 업무에 적응을 하다보면 처음 출근했을 때 가졌던 마음이 조금씩 퇴색되잖아요? 저도 그랬었는데 첫 출근 당시의 기분을 떠올리니 다시금 새로운 마음으로 신협을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_ 근무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을 말씀해 주세요.

조합원님 중에 대출을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조건이 까다롭고 대내외 사정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조합규정을 찾아보고 대외 상황도 좋게 바꾸어보려고 노력해서 대출을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희열과 성취감은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로 기쁘게 남아있습니다. 그 대출을 받았던 조합원님이 너무 감사하다고 자신이 잊지 않고 보답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대출로 인해 조합원님은 위기를 잘 넘겼고 지금은 엄청 잘되셔서 저와도 좋게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Q _ 신협人으로서 자부심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벌써 31년을 몸담은 신협에 대한 자부심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신협은 저에게 직장이자 친구이고 소통의 장이며 저를 더욱 발전시켜주는 원동력입니다.

Q _ 신협 61주년 축하 말씀도 부탁드릴게요.

신협의 61주년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 뜻깊은 순간은 모든 직원들의 노력과 조합원님들의 사랑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청년들에게는 좋은 직장이 되어주고 조합원님들에게는 발전된 금융서비스와 편리한 이용을 할 수 있는 신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직원들의 평생직장이 되어 함께 발전하고 상생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