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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협의 역사

신협의 역사

신협의 출발은 믿음과 나눔의 정신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신협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미국인 메리 가브리엘라(1900~1993)수녀와 장대익(1923~2008)신부 입니다.

6.25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궁핍해 미국의 구호물자에 의존하는 사회적 혼란기였습니다. 따라서 저축을 하거나 누구에게 돈을 빌려주기가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는 1960년 5월 1일, 부산에서 메리놀 병원 직원과 천주교 교우 27명을 조합원으로 성가신협을 설립했습니다. 우리나라 신협의 시초입니다.

장대익 신부는 같은 해 6월, 서울에서 가톨릭 교인을 대상으로 가톨릭중앙신협을 설립해 한국 신협의 확산에 불을 댕겼습니다.

행복한 미래
어부바 하겠습니다.

2014~현재

2010년대 중반 이후 신협은 정체성 회복과 신협정신의 강화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해 나갔다. 또한 2014년 11월에는 사회공헌활동을 더욱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국내 최초 기부협동조합인 ‘신협사회공헌재단’을 출범시켜 기부·나눔·봉사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2018년 하반기부터 ‘평생 어부바’라는 슬로건과 함께 ‘7대 포용금융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정부와 지역,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20년에는 신개념 모바일 통합플랫폼 ‘온(ON)뱅크’를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기존 시·군·구에 제한되었던 여신 영업구역을 10대 권역으로 확대하는 등 더 큰 경쟁력을 확보했다.

2006~2013

신협은 2006년 대전 시대를 열며 제2의 도약을 알렸다. 2010년 1월 총자산 40조 원을 돌파한 신협은 9월 아시아신협연합회(ACCU) 워크숍 및 ACCU 포럼 개최와 함께 비전선포식 등을 개최하며 창립 50주년을 기념했다. 신협은 ‘협동조합의 참다운 모델, 상호금융의 진정한 리더’라는 비전을 설정하고 가치추구·감동지향·건전경영·상생발전 등 4대 핵심가치를 선정해 추진해 나갔다.

1997~2005

신협은 1998년 1월 신협법 개정에 따라 조합-중앙회의 2원화 체제로 전환하며 체제를 정비했다. 1999년 12월 이뤄진 신협법 4차 개정은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하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2003년 7월 이뤄진 신협법 5차 개정은 중앙회가 자체적인 예금자보호제도를 운영하고 비조합원 대출이 가능해지는 등 건전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1~1997

1990년대는 신협 역사상 유일하게 조합-연합회-중앙회로 이어지는 3단계 조직체계가 운영된 시기였다. 이에 따라 신협은 계통기구의 역할 분담과 업무 효율화, 사업영역 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전개해 나갔다. 그 결과 1990년대 초 한국신협운동 역사상 신규조합 설립이 가장 활발히 이뤄졌다.

1982~1990

신협은 1980년대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해 1983년 조합원 100만 명 돌파에 이어 1986년에는 총자산 1조 원 돌파라는 쾌거를 이뤘다. 아울러 1983년에는 세계신협인대회를 서울에서 유치하며 한국신협을 국제적으로 각인시키고 국내에도 신협운동의 참모습을 인식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1972~1981

1972년 한국신협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신협법이 제정된다. 신협법 제정은 이전까지 순수 민간자율의 협동조합운동이었던 신협이 법의 보호를 받은 제도 금융의 뿌리를 내렸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법 제정에 따라 조합들은 법인설립 인가를 받고 확실한 기반 위에서 건전 경영과 신협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1960~1971

1960년 서민들의 오랜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신용협동조합운동이 태동한다.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가 주도해 출범한 부산 성가신용조합과 장대익 신부가 주도한 서울의 가톨릭중앙신용조합은 한국신협운동의 뿌리로, 60년 신협운동의 첫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