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협 선구자

선구자 장대익 신부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 강정렬 박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것 강정렬 박사
장대익 신부

지금부터 약 100년 전 평안도의 작은 포구에서 한 소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폐 질환을 앓아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던 소년은 방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꿈을 꾸었다.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사람이 되겠노라고. 그가 걸어온 길은 바로 한국신협의 역사가 되었고, 그의 직함 앞에는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한국 최초의 신협인 성가신협 초대 이사장, 신협연합회 초대 회장, 아시아신협연합회 초대 사무총장, 아시아인 최초의 세계신협협의회 아시아 담당관 강정렬. 1991년 은퇴할 때까지 31년 동안 그는 세계를 향한 개척자였다.

강정렬 아우구스티노(Augustinus)는 소달구지를 몰고 가다 땅에 떨어진 이삭 하나를 보고는 달구지를 세운 채 이삭을 주워들어 소중히 주머니에 넣던 부지런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그리고 3명의 누나와 함께 진남포 인근 월지리 공소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 소년은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인근 진남포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교원이 되었다.

강정렬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6·25전쟁이었다. 종교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아 가족과 토지 등 가진 모든 것을 북한에 둔 채 떠난 그는 1·4후퇴 때 미군 수송선을 타고 군산으로 피난을 왔다. 아내와 아들은 38선이 가로막히기 전에 이미 북한을 탈출했기에 그와 아내는 한동안 서로의 소식도 모른 채 이산가족으로 지냈다.

군산에서 그는 미군 부대의 통역 일을 자원했고, 뒤에 한국에 봉사하러 온 영국 출신 퀘이커(Quaker) 교도 의사들이 근무하는 도립병원에서 통역 일을 했다. 그리고 영국 의사들의 추천으로 부산에 가서 가톨릭구제회 한국 총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풀씨처럼 온 힘을 다해 남한 땅에 뿌리를 내리려고 노력했다. 그가 진정한 자신의 이상을 찾은 것은, 가톨릭구제회 일을 하면서 미국에서 보내온 신협 관련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등 자원봉사자로서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를 도우면서부터였다. 1960년 가브리엘라 수녀가 우리나라 최초의 신협인 성가신협을 만들 때, 강정렬은 성가신협을 이끄는 이사장이 되었다. 뒤이어 1965년광안신협의 창립에도 기여했을 뿐 아니라 이사장으로서 신협 운영의 정석도 보여주었다. 그의 성실성과 열정은 신협 조합원들에게도 전파되었다. 특히 그가 손으로 하나하나 기록한 신협 장부는 세계 신협인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티끌 모아 태산을 어떻게 이루는지, 그렇게 만들어진 삶의 언덕이 수렁에 빠진 민중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영화처럼 감동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강정렬은 우리나라 신협연합회 초대 회장에 이어 ACCU 사무총장으로 근무하면서 개혁의 무대를 아시아로 넓혔다. 그는 인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대만의 고산족, 파푸아뉴기니의 정글에 있는 농사꾼, 중국 옌볜延邊에 있는 잊혀진 우리 민족을 만나기도 했다.

건전한 신용협동조합운동을 통한 경제자립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실천적 인물로 평가받아 1981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뒤 그는 다시 한번 삶의 무대를 넓혔다. 세계신협협의회 아시아 담당관으로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몰려 있는 아시아의 발전을 위해 선진국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낸 것이다.

2009년 8월 22일, 지상에서의 일을 마치고 영원한 안식을 얻기까지 강정렬은 이웃을 위한 사랑과 봉사의 발걸음을 이어갔다. 그가 20년 동안 손에 든 낡은 가방과 손때 묻은 안경이 그 증명이었다. 강정렬은 소박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인류애로 가득찬 그의 정신은 고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직했다. 화려한 언변으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운동가는 아니었으나 오직 진실 하나로 국경을 초월해 서민의 삶을 뿌리부터 바꿔놓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고리채에 시달리지 않게 했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도왔고, 술과 노름을 끊고 직업을 가지고 당당히 사회에 나설 수 있게 해주었다.

‘신협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인간답게 발전시키자는 일종의 인간 개조 운동이자 성인 교육이다. 국민을 부지런히 일하게 하고, 돈을 아껴 저축하게 하고, 서로 믿고 돕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길러주는 운동이다.’

그가 평생 동안 추구한 신협의 철학은 ‘좋은 사람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는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이글거리는 8월의 어원이자 로마의 첫 번째 황제 이름에서 유래한 아우구스티노는 헌신을 통해 하느님의 세상을 넓힌 성인이다. 강정렬 아우구스티노.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한 소년은 그의 이름 그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세계인으로 살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갔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것 강정렬 박사
  • 1923. 10. 08. 평안남도 용강군 회운 월지리 출생
  • 1933. 평안남도 용강군 서화 공립 보통학교 졸업
  • 1937. 평안남도 광덕 고등과 졸업
  • 1941. 진남포 공립 남 상업학교 졸업
  • 1941~1943. 일본 와세다대학 통신대학 상과 졸업
  • 1958.~1969. 가톨릭구제회 서울사무소 사무총장
  • 1960. 05. 01. 성가신협 초대 이사장 취임
  • 1962. 09. 07. 신협 부산지부 창립, 초대 지부장 취임
  • 1964. 04. 20. 한국 신협연합회 창립발기인
  • 1964. 04. 26.~1964. 04. 27. 신협연합회 초대 회장 취임
  • 1965. 대한민국 보건사회부로부터 사회공로상 수상
  • 1966. 04. 24.~1967. 04. 22. 신협연합회 제5대 회장 취임
  • 1967~1968.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학, 캐나다 노바스코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대학에서 신용협동조합에 관한 연수 수료
  • 1969~1984.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CUNA 극동지역 주재원 근무
  • 1971. 04. 24.~1983. ACCU 초대 사무총장 취임
  • 1972. 08. 01. 신협법 제정 추진위원 활약
  • 1981. 08. 31. 라몬 막사이사이상 수상
  • 1983~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WOCCU 보통사무소 기구 개발기술원으로 활동
  • 1984. 12. 캐나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대학 명예 법학박사 학위 수여
  • 1985. 06. 05. ACCU DSA(Distinguished Service Award) 수상
  • 1989. WOCCU 아시아 담당관 역임
  • 1990.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옌볜신협 소개 및 조직 지원
  • 1991. 10. 은퇴
  • 1997. WOCCU DSA(Distinguished Service Award) 수상
  • 2009. 08. 22. 선종(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 향년 8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