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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10월호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채플 천장화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채플 천장화 중 ‘아담의 창조’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은 화가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경우 평생 조각만 하며 사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그의 생각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인 ‘조각’ 대신 하기 싫은 일인 ‘그림’을 그려야 했고, 60세에 은퇴하고 평범한 삶을 꿈꿨으나 그 이후로도 30년간 ‘건축가’로 살았다.
미켈란젤로는 20대 때 이미 스타 조각가였다. 25세 때에는 <피에타>를 완성했고, 3년 뒤인 1504년에는 <다비드>를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세우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다비드>를 조각한 대리석은 폭이 좁아 깎아내기가 쉽지 않았고 이탈리아 최고의 조각가들이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모두 포기했다. 그 돌은 35년을 돌고 돌아 미켈란젤로에게 왔고, 그는 완벽한 형태의 다비드를 완성했다. 다비드상이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제작되던 관례를 깨고 근육질의 성인 남성이 골리앗에게 돌을 던지기 위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파격적인 나체를 만들어 동시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자연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을 넘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르네상스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맡다

미켈란젤로가 33세이던 해인 1508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이 훼손되었고, 교황은 그에게 천장화를 새로 그리라고 명령했다. 조각가로서의 야망이 가득 차 있는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시스티나 성당은 성 베드로 성당의 바로 오른편에 위치한 예배당으로, 교황의 나라 바티칸에 있는 여러 성당들 중 콘클라베 Conclave(교황을 선출하는 의식)가 열리는 중요한 공간이다. 20m나 되는 높이의 약 157평 규모의 천장을 모두 그림으로 채우라니. 미켈란젤로는 어린 시절 2년간 그림을 배웠지만 벽화에 관련해서는 왕초보나 다름없었다. 그는 한창 조각을 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왜 자신의 전문 분야도 아닌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평소 그림은 조각보다 시시하다고 했으니, 그 말을 증명할 수 있는 그림, 그가 그동안 보아왔던 모든 그림들의 수준을 능가하는 그림,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이미 성당 사방의 벽에는 모세와 예수의 스토리가 그려져 있었으므로, 그는 모세 이전의 구약성서 이야기를 천장에 담기로 했다. 네 귀퉁이에는 이스라엘의 주요 역사를, 가장자리에는 예수의 8명의 조상과 그 사이사이에는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12명의 예언자를 그렸고, 가운데에는 창세기의 주요 내용을 구상했다. 구약 성서의 방대한 내용 중 주요 내용들을 큐레이션하여 이 세상에 한번도 없던 역대급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채플 천장화>
1508-1512년, 프레스코화, 40.23 x 13.41m, 바티칸 시국

역대급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한 노력

빠른 속도로 천장의 1/3 정도를 채워가던 중, 그에게 커다란 시련이 찾아왔다. 겨울에 큰 비가 내렸는데 습기로 인해 천장에 곰팡이와 이끼가 끼고, 염분에 의한 풍화현상으로 그림이 심하게 훼손 된 것이었다.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실패였다. 눈앞이 깜깜해진 그는 교황에게 서둘러 실패를 고백하고 다시 도망치려 했다. 높고 까다로운 예술적 기준이고 자존심이고 다 필요 없었다. 그냥 빨리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다독이고, 교황청 건축가이자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미켈란젤로가 신뢰하는 친구인 줄리아노 다 상갈로에게 그를 돕도록 했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수습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고, 전보다 더 혹독하게 고된 노동을 반복했다.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한쪽 눈의 시력도 잃었다.
그림의 절반 정도가 완성되었을 무렵, 교황은 처음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보았고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수준의 천장화였다. 아직 미완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1511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이해 그림을 공개했다. 그림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켈란젤로는 평평하지 않은 천장의 그림이 밑에서 보았을 때 왜곡되어 보일 것까지 비례를 계산하여 완벽한 형태의 그림을 그렸고, 그가 그린 그림의 생동감과 입체감은 그것이 그림인지 조각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천장화는 1512년 무사히 완성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살아 있는 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목표를 높게 세우고 실패하는 것보다
수월하게 달성하기 위해
목표를 낮추는 것이 더 위험하다.
- 미켈란젤로
엄미나 대표
시그니처북스 엄미나 대표는 런던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에서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디플로마 코스를 이수하며 현지 미술관 전문 투어 가이드로 활동했다. 현재 대기업 및 다양한 기관에서 강의 중이며, 창의적인 명화 감상 강의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08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로도 활동 중이다.
minaum619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