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2022년 5+6월호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곡,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인상주의 미술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인상주의 음악은 전통적인 화성 기법에서 벗어난
작곡기법과 색채적인 음의 효과, 모호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곡이라 불리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드뷔시가 30세에 작곡한 곡으로 시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동양 음악을 접하면 탄생한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감상하기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는 1862년 파리 근교 생 제르망 레이(St Germain Laye)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파리에서 인상주의 미술 운동이 막 태동하던 시기로, 드뷔시는 어린 시절 시인 베를렌(Verlaine)의 의모(義母)가 되는 모테(Mauté) 부인에게 음악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아마추어이면서도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모테는 무상으로 드뷔시의 음악 레슨을 맡아 진행했으며 드뷔시는 열 살이 되던 1872년(10세)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며 천재성을 드러냈다.
근대와 현대 음악의 가교를 마련하다
피아노와 작곡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드뷔시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통했다. 특히 당시에는 생소한 화음을 곡에 삽입해 교수들 사이 악명이 높았다.
당시 작곡가의 등용문으로 로마상 제도가 유명했는데 대회에서 대상을 획득한 사람은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 유학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드뷔시는 1884년 칸타타 「방탕한 아들」로 로마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게 되지만 여전히 특유의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며 주류 음악계에서 이단아로 불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드뷔시는 바그너에 심취하기도 하는 등 자신만의 음악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1889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자바 섬의 전통음악을 듣고 영감을 얻은 드뷔시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가기 시작하고 1894년 근, 현대 음악의 시작을 알린 걸작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발표한다.
음악 표현 방식을 변화시키다
이후 그는 인상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아 가능한 모든 색채를 음악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의 대표작인 바다(교향시)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개인사에서는 이혼과 딸의 죽음으로 인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기에 신진 작곡가들의 등장하며 그의 자리를 위협했고 암에 걸려 육체적으로도 쇠약해졌다. 1918년 상태는 극도로 나빠졌고 그는 파리의 자택에서 56세의 삶을 마무리하며 숨을 거두었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시인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 곡은 서양 음악사에 전환점을 가지고 온 작품으로 불린다. 전주곡에 이어 간주곡과 종곡도 만들어질 예정이었으나 전주곡만으로도 완성도가 뛰어나 모두 취소된다. 목신은 숲, 사냥, 목축을 맡아보는 신. 반은 사람, 반은 동물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판(Pan), 로마 신화의 파우누스(Faunus)에 해당한다. 이 곡에 영감을 준 말라르메 시 ‘목신의 오후’는 님프를 사모하는 목신 판의 몽상을 묘사한 것으로 육욕의 허무함을 순수한 미적 세계 속에서 담아냈다. 근대 서정시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초반 주제는 플루트로 시작한다. 이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주제를 발전시키며 하프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을 더한다.
중반 플루트와 첼로는 목신의 꿈 속에서 그려지는 환상을 선율로 들려준다, 플루트와 오보에에 화답하는 듯한 하프 소리가 인상적이다.
후반 이어 등장하는 클라이맥스에서는 나른한 꿈의 달콤함이 이어지며 이후에는 하프와 호른이 동시에 연주되며 꿈에서 깼을 때의 허망함을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