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2024 5+6호

해변에서 산책 배경
풋코,
사람이 개랑 같이 잘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해?
CU가 만난 사람
글. 손은경 사진. 정우열 제공
풋코,

사람이
개랑 같이
잘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해?

“개를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결국 불행해졌다. 그렇게 끝나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럼 개를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거니까. 개를 사랑했노라, 그러길 참 잘했노라. 내가 꼭 찾을게, 그런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을.” 노견 풋코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도서 «노견일기»의 저자 정우열 작가.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해피엔딩의 길을 찾았을까? 그 길의 어디쯤 와 있을까?

해변에서 산책
 
해변 일러스트
«노견일기» 저자 정우열 일러스트 작가
안녕 내 사랑 거기서는 아프지 않길

노견과 함께 사는 보호자는 자신의 나이 든 개를 볼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요동친다. 늙어가는 개에 대한 안쓰러움,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음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 예정된 이별이기에 보호자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정우열 작가는 반려견 풋코와의 하루하루를 그려낸 ‘노견일기’를 ㈜동그람이가 운영하는 네이버 포스트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네이버 동물공감에서 화제의 시리즈로 올라갔고, 노견을 키우는 사람, 반려견을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 가릴 것 없이 위로와 공감이 된 것. 온라인 연재였던 ‘노견일기’는 책으로도 출간이 되었고 10쇄까지 하며 우리나라 반려견 사랑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랑과 응원으로 이어졌던 ‘노견일기’는 2023년 2월, 219회 에필로그를 끝으로 연재가 종료되었다. 이야기의 주인공 풋코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풋코와의 이별이 아득히 먼 옛날 일 같기도 하고, 불과 얼마 전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반려동물과 같이 산다는 것,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르는 이별과 그 뒤의 삶에 대해서 매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어요.”

개는 고립감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사람이 아닌 다른 종과 가족이 되는 삶을 택한 사람들은 보통 용감한 게 아니다. 용감함을 넘어 무모하달까? ‘사람’ 가족과도 얼마나 삐거덕거리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의사소통 방식도 다른 존재라니.

하지만 다른 종과 사는 삶을 통해 거꾸로 인간끼리 잘 지내는 법도 배울 수 있다고 정우열 작가는 말한다.

“본질적으로 나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 산다는 건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잘 해야 하죠. 그런데 사람이 아닌 다른 종과 사는 경우 삶의 방식이 다르고, 서로 원하는 것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니 각별한 노력이 필요해요. 상대방에 대해 더 배우고 존중하고, 상대방의 언어로 소통하려고 애쓰고. 이건 사람 간이든 이종 간이든 함께 잘 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봐요.”

개와 사람, 너무나 다른 두 존재다. 이 개는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고 그 존재 자체로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이래서 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의 상대다. 특히 요즘 사회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가 매우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면서 여러 가지 원치 않는 갈등과 고민이 생기고, 서로 간에 적당한 거리를 두거나 아예 관계를 단절하고 싶은 욕구가 자리하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도록 진화한 본성과 타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은 욕구 사이에 스며든 것이 바로 반려동물이 아닐까.

“개들은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 매우 순수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소통하기 때문에 관계에 지친 인간에게 위안을 주면서도 혼자라는 고립감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죠. 게다가 나를 향한 그 까만 콩 세 개와 복실한 털, 꼬순내······ 아, 이만 줄이겠습니다.”

강아지
강아지 볼뽀뽀

“상대방에 대해 더 배우고 존중하고,
상대방의 언어로 소통하려고 애쓰고.
이건 사람 간이든 이종 간이든
함께 잘 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봐요.”

눈보라 일러스트
반려견과 침대에 누워있는 일러스트 - 마치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지금의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곤 하잖아.”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정우열 작가와의 이야기에서 ‘노견’이라는 주제를 빼놓을 수 없다. ‘노견’은 비단 반려동물 보호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야를 확장해서 보면 ‘노부모’라는 주제와도 연결된다. 우리는 나이 들며 점차 쇠약해지는 부모님과 마주해야 하는 때가 온다. 결국 상대가 개든 사람이든 정해진 이별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살아간다. 최후의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의연함’이다.

“풋코의 마지막 1년, 나이 들면서 생기는 변화가 매우 본격적이고 심각한 양상을 띄었어요. 눈이 안 보이고, 제대로 걷지 못하고. 치매 증상을 보이기도 해 이를 지켜보는 저 또한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참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일을 함께 의연하게 견디는 것이 우리가 함께 해온 좋았던 시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대자연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이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반려견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유기’라는 폭력을 가하고 있다. 정우열 작가는 개와 생활하기에 좀 더 나은 곳으로 가자는 결심을 하고 제주도 생활을 택했는데, 그와 같은 생각으로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반면 제주도에는 유기된 채 길을 배회하는 개들도 많다. 제주도라는 곳이 참 아이러니한 장소가 되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제주도의 유기견 문제는 너무 큰 고민거리이자 고통이에요. 그걸 보다 못해 입양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분들은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바쳐 개들을 돌보기도 해요. 고통받는 개들과 몇몇 사람의 희생을 이렇게 방관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어요. 모든 개들이 적절한 보살핌을 받고 사랑받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개와 함께 살았고, 개를 통해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으며 개가 있어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한 정우열 작가. 그는 «노견일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말이야 개를 능숙하게 잘 돌보지만 자기 개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좀 필요한 것 같아. 왜냐면 개 키우는 사람들은 어디 갈 때 개 맡기기가 참 어렵거든. 그리고 가끔 유기견을 임시보호할 사람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너 죽으면 내가 그런 사람이 돼볼까 한다.”

반려견을 안고 꽃나무를 보는 일러스트 - 곧 수국도 피겠다. 그치?

반려견 풋코는 떠났지만 다른 누군가의 개를 위해 자신의 손을 내미는 삶.
어쩌면 이것이 정우열 작가가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의 이정표가 되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