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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호

계절을 음악에 담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계〉.
특히, 〈사계〉 중 ‘봄’은 안토니오 비발디의 이름 혹은 곡의 원제를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한 번 쯤을 들어본 적이 있는 음악이다.
비발디의 대표곡 중 하나인 〈사계〉를 통해
안토니오 비발디의 삶과 그의 음악에 대해 알아보자.
<사계> 전곡
감상하기
음악가인 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다
이탈리아의 음악 선생이자 작곡가, 사제 겸 바이올리니스트인 안토니오 비발디는 바로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음악가 중 한 명이다. 그가 작곡한 작품 중 〈사계〉가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봄’의 제1악장은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1678년 탄생한 비발디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산 마르코 대성당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를 통해 음악을 배웠다.
그는 15세에 수도원에 입회하며 25세에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건강 문제로 미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느라 미사를 자주 빼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피에타 음악원에서 명성을 떨치다
비발디는 1703년 베네치아의 소녀 고아원 중 하나인 피에타 병원 부속 고아원(Ospedale Della Pieta)의 바이올린 교사로 임명되었다.
고아인 여자 아이들에게 국비 음악교육을 진행하는 피에타 음악원은 당시에도 매우 높은 음악 수준을 자랑했으며, 공공기부금과 정규 연주회의 수익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비발디는 이 곳에서 연주회의 지휘, 합창의 감독 등을 진행하며 많은 곡을 작곡했다. 그의 활약으로 음악원의 수준은 더욱 높아져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유명인들과 외국인 방문자들이 음악원의 연주회에 속속 참여하는 등 점점 인기가 많아졌다.
연주회를 방문하는 이들과 친교를 맺으며 명성을 알리던 비발디는 합주 교사직을 유지하면서 오페라 작곡가로도 활동하기 시작한다.
오페라 공연에 집중, 쓸쓸한 생을 마감하다
교단은 성직자이자 교육자이면서 오페라 공연에 집중하는 그를 세속적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나이 차가 스무 살이 넘게 나던 여제자인 안나 지로와 스캔들이 퍼지면서 그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비발디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신에게 오페라 악단을 맡기겠다고 약속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를 만나러 빈으로 가지만, 이미 황제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오페라 공연이라는 꿈을 위해 타국의 땅을 밟은 그였지만 낭비벽 때문에 오페라 상영이나 바이올린 연주로 벌었던 재산도 바닥난 상태였기에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다 1741년 쓸쓸히 객사한다.
그는 〈사계〉뿐만 아니라 작곡에 있어 창의성, 곡의 구성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며 바로크 음악의 선배들을 넘는 작곡가로 평가된다.
그가 위기를 극복하고, 음악가로서 더욱 활약할 기회를 얻었다면 우리의 귀는 더 큰 호사를 누렸을지도 모른다.
후세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희노애락 가득한 삶을 닮은 사계절을 고스란히 품은 〈사계〉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음악의 기쁨을 알려주고 있다.
MUSIC STORY
비발디의 사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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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악장
‘Allegro’
봄을 알리는 가장 대표적인 소리는 새들의 노랫소 리가 아닐까. 살랑이는 바람과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새들의 노래와 어울려 봄의 정취를 알린다.
제 2악장
‘Largo e pianissimo’
꽃들이 만발한 목장에서 나뭇잎들은 서로 부딪히며 속삭인다. 양치기는 따스한 햇살에 자신의 일을 잠시 멈추고 잠이 든다.
제 3악장
‘Danza Pastorale Allegro’
춤추는 농부와 양치기 숲의 요정들이 백파이프 소 리에 맞추어 찬란한 봄의 여흥을 즐기는 모습이 음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