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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협

신협의 역사


신협의 역사-신협의 출발은 믿음과 나눔의 정신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신협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미국인 메리 가브리엘라(1900~1993)수녀와 장대익(1923~2008)신부입니다.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와 장대익 신부

6.25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궁핍해 미국의 구호물자에 의존하는 사회적 혼란기였습니다. 따라서 저축을 하거나 누구에게 돈을 빌려주기가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는 1960년 5월 1일 , 부산에서 메리놀 병원 직원과 천주교 교우 27명을 조합원으로 성가신협을 설립했습니다. 우리나라 신협의 시초입니다. 장대익 신부는 같은 해 6월, 서울에서 가톨릭 교인을 대상으로 중앙신협을 설립해 한국 신협의 확산에 불을 당겼습니다.

  • 2000년대
  • 1990년대
  • 1970~80년대
  • 1960년대
2000년대 희망100년을 향한 새로운 전진

한국신협은 그동안 이상적인 협동조합 모델을 만들고자 꾸준한 시스템 구축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사업다각화와 수익모델 발굴에 집중하며 한국의 대표서민금융기관으로 우뚝 섰다. 올해로 58주년을 맞은 한국신협은 조합원과 함께 걸어온 지난 반세기를 뒤돌아보고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희망 100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1990년대 성장과 시련 그리고 위기극복

1990년대는 신협의 황금기로 불린다. 1986년 당시 자산 1조원, 조합원 100만 명이던 규모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자산 20조원, 조합원 500만 명을 돌파하며 거침없는 성장을 이어갔다. 또한 1990년 TV광고를 시작하며 대국민 홍보시대를 연 것도 이 시기였다. 그러나 1997년 IMF외환위기로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은 멈춰 섰다.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선택했고 오래지 않아 위기를 극복했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신협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큰 힘이 됐다.

1970~1980년대 성장을 위한 기반구축

1971년 한국신협은 일본, 대만 등 아시아 8개국과'아시아신협연합회(ACCU)'를 창설하며 아시아신협의 리더로 부상했다. 1972년에는 오랜 숙원이던 신협법이 제정됨에 따라 법적·제도적 안전장치 및 성장의 발판을 확보했다. 1981년, 인재양성을 위해 조합의 출자금과 독일 미제레오재단의 지원으로 신협연수원을 개원하는 한편 1983년 서울에서'세계신협인대회 및 세계신협협의회(WOCCU)총회'를 개최하며 한국신협의 발전상을 세계에 알렸다.

1960년대 희망공동체, 신협운동의 시작

전쟁의 폐허로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던 시절, 초기 신협지도자들은 소외계층의 경제적 지원을 위해 자조·자립·협동의 공동체 운동인 신협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1960년 5월 1일,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의 소개로 부산에서 한국 최초의 신협인'성가신협'이 탄생했으며 곧이어 서울의 장대익 신부가 '가톨릭중앙신협'을 창립했다. 1962년 창설된 협동조합교도봉사회는 전국적인 신협운동 확산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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